‘마이클 마이어스’는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공포영화 악당 캐릭터 중 하나입니다. 길고 긴 영화의 역사에서 이른바 ‘히트 공포영화 시리즈’라는 것이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마이클 마이어스가 등장하는 ‘할로윈 시리즈’는 히트 공포영화 시리즈 중에서도 원로 격인 작품인데, 존 카펜터가 시리즈의 1편을 만든 연도는 1978년입니다. 토브 후퍼의 ‘텍사스 전기톱 학살’은 1974년에 나왔고, 숀 S. 커닝햄이 1980년에 13일의 금요일 1편을 만들었습니다. 그 후 웨스 크레이븐이 1984년에 ‘나이트메어’를 만들고 1987년에 클라이브 바커가 ‘헬레이저’를 만들면서 전설적인 호러 시리즈의 계보가 이어지게 되죠.
앞 문단에 언급한 다섯 개의 히트 공포영화 시리즈는 작품마다 상징적인 주인공 악당 캐릭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캐릭터들은 각각의 작품들의 정체성 그 자체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텍사스 전기톱 학살의 레더페이스, 할로윈의 마이클 마이어스,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 부히스, 나이트메어의 프레디 크루거, 헬레이저의 핀헤드. 인기나 영향력의 차이는 있지만 이 캐릭터들 모두 공포영화라는 장르를 발전시키고 인기의 저변을 확장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캐릭터들이죠.
이 캐릭터들의 인기나 지명도 순위는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는 듯한데, 한국의 경우 1980년대 이후에 나온 작품들이 좀 더 지명도가 높은 편입니다. 제가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VHS가 일반 가정 수준까지 광범위하게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 1980년대 중후반 이후부터인 것 같고, ‘토요명화’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칼라 TV로 더빙 외국 영화를 제대로 즐기는 문화 역시 1980년대부터 생겼을 겁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반 사이의 시기에 ‘납량 특집’이라고 해서 여름에 공포영화를 TV에서 많이 방영했었는데, 이때 13일의 금요일 시리즈가 방영이 되면서 한국에서 지명도가 크게 올라갔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13일의 금요일과 나이트메어 시리즈에 열광하면서도 할로윈 시리즈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이 시리즈의 제목을 처음 들었던 게 1998년에 ‘할로윈 H20’가 개봉했을 때였는데(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전설적인 호러 시리즈의 20주년 기념작 어쩌고 하면서 소개하더군요) 어차피 청소년 관람불가라서 극장에서 볼 수도 없었고 그냥 이런 시리즈가 있구나 하고 알게 된 정도였죠.
나중에 성인이 돼서 결국 이 시리즈를 보기는 했는데 처음 본 작품이 뭐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납니다. 2007년에 극장에서 ‘할로윈: 살인마의 탄생’의 봤고 오리지널 시리즈 1편부터 3편까지 몰아서 본 적이 있는데 둘 중 뭐가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극장에서 본 ‘할로윈: 살인마의 탄생’은 상당히 재미있었지만 컴퓨터 모니터로 몰아서 본 오리지널 시리즈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는 감상입니다. 극장과 모니터라는 감상 환경의 차이도 크겠지만 사실 어린 시절에 본 13일의 금요일이나 나이트메어와는 달리 성인이 된 후 뒤늦게 너무 옛날에 나온 영화를 보게 된 감상의 차이도 매우 크다고 볼 수 있죠.
캐릭터 자체의 강렬함도 제이슨이나 프레디에 비해 떨어졌던 것 같아요. 마이클 마이어스는 공포영화 살인마 캐릭터의 원로이고 원조격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20세기 소년’에 나온 대사처럼 ‘언제나 오리지널은 손해만 보고 카피의 카피가 세상을 평정한다’라는 진리가 여기서도 적용이 되는 것 같습니다. 원조나 오리지널들은 대부분의 경우 카피들을 충분히 접하고 뒤늦게 접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할로윈: 살인마의 탄생’은 상당히 재미있게 봤고 사실 마이클 마이어스라는 캐릭터에 대한 흥미와 애정은 이 작품부터 출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 ‘할로윈 킬스’의 리뷰글을 쓸 때도 언급한 사실이지만 저는 지금까지 본 할로윈 시리즈 중에서 유이하게 극장에서 본 두 작품인 ‘할로윈: 살인마의 탄생’과 ‘할로윈 킬스’를 가장 좋아합니다. 극장이라는 감상 환경 때문이 아니고 정말로 이 두 작품의 내용이 재미있었기 때문이고 특히 마이클 마이어스의 캐릭터 묘사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에요.
할로윈 시리즈의 모든 작품을 본 것은 아니지만 제가 알기로 ‘할로윈: 살인마의 탄생’에서 유일하게 마이클 마이어스의 어린 시절이 꽤 상세하게 묘사됩니다. 앞에서 이 작품과 할로윈 오리지널 시리즈 중에서 뭘 먼저 봤는지 기억이 안난다고 했지만 극장에서 이 작품을 볼 때 초반부 내용 전개가 뭔 내용인지 다소 어리둥절했던 것을 떠올리면 결국 제일 처음 본 할로윈 시리즈가 이 작품인 게 맞는 것 같아요. 마이클 마이어스가 어린 시절에 근친 살해를 저지르고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 내막이 있는 캐릭터라는 것도 모르는 채로 이 영화를 봤다는 거니까요.
제가 ‘할로윈: 살인마의 탄생’의 내용을 상당히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제이슨이나 프레디, 혹은 레더페이스 같은 괴물 수준으로 묘사되었던 살인마 캐릭터가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정상적인 동네 소년으로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타고난 싸이코패스이고 악의 화신이라는 면모도 이 영화에서 충분히 그려지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에 가족과 함께 생활하며 가끔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모습들이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할로윈: 살인마의 탄생’은 마이클 마이어스의 평생의 숙적인 로리 스트로드가 사실 마이클 마이어스의 동생이었다는 설정을 깊게 파고들어간 작품이기도 한데, 2018년에 블룸하우스가 만든 리부트 시리즈에서는 이 설정이 사라져버렸지만 저는 이 리부트 시리즈를 보면서도 여전히 마이클 마이어스의 캐릭터성은 ‘할로윈: 살인마의 탄생’에서 묘사된 어린 시절부터 이어지는 것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애초에 이 시리즈가 굉장히 여러 번 리부트와 리메이크가 이루어지며 내용과 설정들이 난잡하게 꼬여 있는 상황이라서 마이클 마이어스의 설정도 개별 작품의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다소 메타적인 관념으로 존재하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수십년을 이어온 유명 시리즈의 주요 캐릭터들은 다 이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난잡하게 이어져온 시리즈와 캐릭터성이지만 어쨌든 최근에 블룸하우스가 제대로 3부작 리부트 시리즈를 만들었고 마이클 마이어스의 서사를 확실하게 종결시켰습니다. 이 리부트 3부작은 1편은 평이 엄청 좋았던 반면 2편, 3편으로 갈수록 평가가 많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2편인 ‘할로윈 킬스’를 가장 재미있게 봤고 (아쉽게 극장에서는 못봤지만)3편도 나름 흥미롭게 봤습니다. 3편은 뭐랄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긴 했는데 실망감도 컸지만 그래도 마지막 엔딩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로리 스트로드라는 개인이 아닌 해든필드라는 마을 전체의 트라우마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최종막의 서사를 풀어나간 점이 괜찮았습니다.
마이클 마이어스라는 캐릭터가 제이슨이나 프레디 크루거 같은 캐릭터와는 확연하게 차별화된다고 할 수 있는 특징이자 매력이라면 역시 그가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닌 현실에 발을 딛고 선 인간 캐릭터라는 사실이겠죠. 물론 그가 정말 순수한 인간이 맞는가를 의심하게 되는 묘사들이 시리즈에서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할로윈 킬스’가 절정이었는데, 명백하게 인간이 아닌 악령 내지는 괴물이라고 볼 수 있는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 수준의 끈질김과 집요함을 보여주거든요. 그래도 그가 결국 인간이라는 아슬아슬한 최후의 선은 지킨 느낌이에요. 하지만 그렇기에 ‘인간 중 가장 무서운 존재’라는 극한의 호러 설정으로 이 캐릭터를 받아들일 수 있는 거겠죠. 모두가 말하듯이 ‘사람이 가장 무섭다’고 하니까요.
마이클 마이어스는 덩치가 크고, 작업복을 입고 있으며, 가장 대표적인 살인 무기는 우리가 주로 야채 등을 썰 때 이용하는 큼직한 부엌칼입니다. 그리고 얼굴에는 할로윈용 장난감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이 가면이 사실 스타트렉의 주인공인 커크 선장의 가면이라고 하더군요. 지금은 그냥 무시무시한 마이클 마이어스의 가면으로 다들 알아보지만.
이 외형 디자인은 뭐랄까... 특별한 잔재주나 기발한 발상이 들어간 것이 아닌 대단히 기초적인 살인마의 디자인입니다. 작업복이나 부엌칼 등 매우 일상적인 아이템들로 매치한 거니까요. 가면 또한 할로윈 시즌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소품이고요. 반면 제이슨의 하키 마스크나 마체테, 프레디의 칼날 장갑이나 악취미적인 줄무늬 의상 같은 것들은 캐릭터의 상징을 만들기 위한 목적의 비일상적인 아이템입니다. 이런 면 때문에 캐릭터의 강렬한 인상 자체는 제이슨이나 프레디보다 떨어질 수 있지만 보다 현실적인 공포감으로 다가온다는 것도 마이클 마이어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데이빗 고든 그린이 리부트 3부작으로 마이클 마이어스를 완전히 저세상으로 보내버렸지만 저는 마이클 마이어스의 캐릭터와 서사는 앞으로 계속 이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무엇보다 이제는 OTT 시대가 되었으니 앞으로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로도 이 시리즈의 새로운 스토리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할로윈 엔드로 일단 깔끔하게 마무리된 후라서 다시 이 콘텐츠를 다루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긴 하겠지만요.
할로윈 시리즈를 세상에 탄생시킨 존 카펜터는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포영화 감독 중 한명으로 꼽힙니다. 그가 만든 명작 공포영화가 엄청나게 많은데 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매드니스’이지만 역시 할로윈 시리즈를 만들고 마이클 마이어스라는 캐릭터를 창조해낸 일이야말로 호러 장르의 거장 감독으로서 존 카펜터가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고의 공포영화 거장 감독이 남긴 위대한 업적으로서 마이클 마이어스의 캐릭터성과 영향력은 공포영화 팬들의 의식 안에 세대를 이어서 영원히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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