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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야기

[감독 이야기] 아리 애스터 Ari Aster

by 대서즐라 2021.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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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 애스터 Ari Aster

아리 애스터는 최근 몇 년간 데뷔하거나 두각을 드러낸 신인 감독 중에서도 가장 많은 주목과 기대를 받고 있는 감독입니다. 그야말로 호러 장르에서 나온 역대급 재능이라고 할 수 있죠. 소재와 아이디어 보다는 시각적인 이미지로 승부하는 감독인데, 이 충격적인 이미지들은 보는 관객들을 완전히 압도해버립니다. 

그의 충격적인 데뷔작은 2018년에 나온 ‘유전’입니다. 자꾸 ‘충격적인’이라는 단어를 쓰게 되는데 솔직히 이 감독의 작품을 설명하는데 ‘충격적인’ 보다 더 나은 표현은 생각 나지가 않습니다. 식상하지만 임팩트가 있죠. 이 표현도, 그의 영화도. 아니, 그의 영화가 식상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소재와 아이디어가 새롭지도 않습니다. 데뷔작 ‘유전’에서 선택한 소재는 21세기 호러 장르에서 가장 흔하게 제작되어온 소재이고 두 번째 작품인 ‘미드소마’ 역시 여러 호러영화들의 기시감이 느껴지죠. 하지만 흔한 소재와 기시감에도 그의 영화를 식상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식상한 영화에서 충격적인 느낌을 받기는 힘들거든요.

데뷔작 유전에서 아리 애스터는 정통 호러 장르인 헌티드 하우스와 악마숭배 소재를 접목시킵니다. 말했듯이 전혀 새롭지 않아요. 소재를 다루는 방향이나 결말까지 폴란스키의 고전 ‘악마의 씨’를 그대로 따라가고 헌티드 하우스는 ‘컨저링’을 전후로 해서 21세기 호러계의 가장 유력한 장르가 되었거든요. 사실 이 장르의 유행은 과거에도 꾸준히 있었죠. 하지만 익숙한 소재와 장르에 특별함을 담아낸 것이 유전 이라는 작품이 보여준 놀라운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악마숭배’라는 영화의 진상이 후반부에 가서 드러난 점은 ‘악마의 씨’(원제는 ‘로즈마리 베이비’)와 큰 차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진상이 드러나는 시점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영화의 전반적인 방향성이 관객이 파악하기 쉽지 않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게 무슨 영화지?’ 라는 불안정한 의구심을 영화의 마지막까지 관객이 유지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중반부가 넘어가는 시점이 되면 이미 관객의 멘탈은 정상이 아니죠. 충격적인 이미지 몇 개를 봤고 영화는 관객의 불안감을 극한까지 몰아붙입니다. 영화에서 정상으로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고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입니다.

유전


충격적인 이미지와 함께 영화의 사운드도 큰 역할을 합니다. 소리를 활용하는 것은 호러 장르에서 관객의 심리를 압박하는데 원래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효과적이라기보다는 그냥 정석이에요. 하지만 이 정석적인 방법을 잘 활용하는 건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호러 라는 장르 자체가 그렇지만 관객의 심리를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효과들을 쓰면서도 상업 콘텐츠로서 아슬아슬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을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특히 사운드를 활용한 호러 효과는 잘못 활용하면 그저 관객에게 고통만을 안겨줄 뿐입니다. 아리 애스터는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정말 잘해요. 적어도 지금까지 발표한 장편 두 작품에 한해서라면요. ‘적어도’ 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그의 두 번째 작품 ‘미드소마’에서는 조금은 과하다는 느낌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미드소마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아리 애스터의 두 번째 작품 미드소마는 데뷔작 유전과 유사하지만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충격적인 작품입니다. 일단 ‘이게 무슨 영화지?’ 하는 느낌이 후반부까지 유지되는 것은 동일합니다. 하지만 후반부에서 임팩트 있는 진상이 드러나는 유전과는 달리 미드소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진 코스대로 친절하게(!) 안내받은 결말에 도달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강렬한 서사를 담은 극영화라기 보다는 일종의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까지 들어요. 쉽게 말해 별 내용이 없게 느껴진다는 거죠. 물론 플로렌스 퓨가 연기한 주인공 대니의 심리 드라마로서 본다면 꽤나 깊이 있는 내용이지만(원래 이것이 이 작품의 주된 드라마입니다) 일어나는 사건 위주로 본다면(관객의 진정한 관심사는 이쪽이니까요) 그저 정해진 코스대로 순탄하게 흘러왔다는 느낌만 들죠.

시각적인 이미지도 달라요. 미드소마가 유전 뿐 아니라 다른 모든 호러 영화들과 비교해서도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입니다. 이 영화는 화면이 밝습니다. 충격적인 사건들이 쨍한 대낮에 일어나고 북유럽의 백야로 밤도 없습니다. 대놓고 영향을 받은 작품인 ‘위커맨’과 비교해도 분명히 차별화되는 이미지를 보여주죠. 물론 가장 극단적으로 차이가 난다고 느껴지는 건 그의 전작인 유전입니다. 시종 어둡고 칙칙한 화면인 유전과 대조되게 의도적으로 밝은 화면을 강조한 느낌도 들어요.

미드소마


이러한 차이점들 때문에 미드소마와 유전은 조금은 다른 반응이 나옵니다. 평가와 흥행 둘 다 유전보다는 조금 떨어집니다. 하지만 유전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요소들이 흥미로웠다는 반응도 많습니다. 두 작품 다 미친듯한 파괴력을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아직도 아리 애스터가 가진 무언가가 ‘소진’되었다는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것의 두배, 세배는 되는 것을 더 터트려줄 감독이라고 여전히 느껴지는 거죠.

다만 이 감독이 복선을 활용하는 방식은 조금은 의구심이 들어요. 감독의 전반적인 화면 미장센이 탁월하지만 유전에서는 디오라마, 미드소마에서는 그림이라는 너무 편한 장치들에 의존한다는 느낌도 들거든요. 이런 장치들은 다음 작품에서 뻔하게 재탕하기가 어려우니까요. 

그의 작품들처럼 뭔가 불안정한 의구심이 계속 존재하기는 하지만 아리 애스터가 굉장한 감독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놀라운 상상력으로 이렇게 충격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호러 감독이 나왔다는 건 호러 장르 팬들에게 축복과도 같은 일이죠. 솔직히 대단한 재능의 신인 감독이라면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도 기대된다고 말하겠지만 아리 애스터에 대해서는 앞으로 계속 호러 영화만 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물론 그가 다른 장르를 하더라도 굉장한 결과물을 보여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좋은 호러 작품이 언제나 기근이었던 영화계에서 아리 애스터 같은 놀라운 재능이 좀 더 이 장르의 발전을 위해 활약해주길 바라는 게 모든 호러 장르 팬들의 동일한 마음일 겁니다.


대서즐라
대중문화와 서브컬처를 즐기는 라이프

트위터 @dsz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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