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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종, 언론시사회 후기에 또 속았다

by 대서즐라 2021.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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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영화 바이럴 마케팅이 고도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제길, 사실 ‘고도로’ 라든가 ‘진화’ 라든가 상대(?)를 인정해주는 듯한 표현을 쓰고 싶지 않은데 이번에 확실히 당해버렸으니 패배를 인정하겠습니다... 가 아니라 이제 뭔가 좀 짜증이 납니다. 엄청 무서울지 알고 기대하고 갔는데 하나도 안 무서워서 느낀 실망감? 배신감? 제가 느끼는 짜증의 본질은 이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영화를 보기 전에 그 영화의 수준(재미와 완성도)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근거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느끼는 짜증입니다. 이제 우리는 뭘 믿고 영화를 선택할 수 있단 말입니까.

랑종의 언론시사회가 있던 날, 시사회가 끝난 저녁 무렵에 커뮤니티 사이트에 호들갑 스러운 내용의 ‘랑종 언론시사회 반응’이라는 게시글들이 올라왔던 걸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SNS나 블로그, 또는 어떤 게시판에 올라온 후기글들을 캡쳐해서 이미지 파일로 만들어 올린 내용이었죠. 그 이미지 파일에 담긴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런 후기 게시글이 올라오고 난 후 당연히 모든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습니다. 안 그래도 ‘곡성’을 만든 나홍진이 스토리와 제작을 맡아 화제가 된 태국 공포영화... 그것도 아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태국영화인 ‘셔터’의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라 7월 개봉작 중에서도 마블의 블랙 위도우, 류승완의 모가디슈와 함께 TOP3의 관심작이자 기대작이었던 작품입니다. 때마침 호러의 계절인 여름이기도 하고요. 그저 관심작이었던 정도가 아니라 제작진의 면면으로 이미 상당한 기대감을 품게 만든 영화였기에 실제 영화가 어떻게 나왔을지 엄청난 궁금증이 형성되었던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언론시사회에서 첫 공개가 되고 저런 내용의 후기들이 올라왔으니 반응은 폭발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저는 사실 랑종에 대해서 큰 기대를 품었던 사람은 아닙니다. 물론 나홍진, 거기에 셔터의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이라는 제작진의 면면만으로 저도 기본적인 관심은 품을 수 밖에 없었고 매달 통신사 VIP 혜택으로 극장에서 반드시 영화 두 편은 공짜로 봐야 하는 상황이라(왜 두 편이냐 하면 제 가족 중 한 명의 VIP 혜택도 모두 제가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7월은 블랙 위도우와 랑종으로 일찌감치 정해 놓고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리고 보려고 정해 놓은 영화가 재미있게 잘 나왔으면 하는 바람과 기대는 당연히 품게 되는 거고요. 그런데 이 영화의 예고편이 첫 공개되었을 때는 상당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어디를 봐도 도무지 재미있는 영화로 느껴지지 않는 거예요. 물론 예고편의 흥미로운 정도가 실제 본편의 재미와 크게 연관있지 않다는 건 숱한 경험으로 알고 있고 나홍진이 스토리와 제작을 맡은 영화라면 곡성 처럼 영화의 실체를 개봉 전까지 꽁꽁 감출 거라고 짐작할 수 있기에 예고편에서 받은 느낌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예고편이 이 정도로 안 당긴다는 건... 그냥 그 자체로 좀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결국 내심 기대감을 상당히 낮추는 방향으로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그렇게 기대감을 줄인 상황에서 저런 호들갑 스러운 언론시사회 후기를 보게 된 거예요. 당연히 줄어들었던 기대감이 다시 스멀스멀 증폭되었죠.


물론 언론시사회 후기를 너무 신봉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슬슬 ‘언시평은 믿고 거른다’라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저도 이번 랑종의 경험으로 어느 정도 그런 방향으로 언론시사회 후기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기울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랑종을 보기 전까지는 언론시사회 반응을 그래도 절반쯤은 신뢰하는 쪽이었습니다. 사실 평론가들과 대중의 영화 평가에서 발생하는 괴리에 대한 논쟁은 영화계에서 꽤 해묵은 논쟁이기는 합니다. 특히 1인 미디어의 발달로 딱히 평론가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지 않은 개인이라도 영화의 평가 여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대가 된 이후로는 평론가나 영화 전문 기자들의 영향은 갈수록 약화 되어 가고 있죠. 대중과의 의견 괴리가 크면 클수록 더더욱요.

그런데 저는 이런 괴리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경우는 평론가들 의견 쪽으로 좀 더 기울어지는 성향입니다. 물론 영화를 보는 사람마다 감상은 제각각이지만 제가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감상은 평론가들의 리뷰에서 더 자주 발견하게 되거든요. 단적으로 평론가들이 극찬하는 영화에 대해서 제가 실망하거나 재미없다고 느낀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 평론가들이 혹평하는 영화에 대해서는 그다지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는 꽤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영화는 많이 봤지만 평론가는 아닌 소위 영화 마니아, 혹은 영화 팬들에게서는 거의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 현상입니다. 사실 평론가들끼리도 그럴 거예요. 좋은 영화에 대해서는 대체로 쉽게 견해가 일치하면서도, 결함이 있는 영화에 대해서는 그래도 평론가 개개인의 성향과 취향에 따라 좋은 점들은 찾아내 서로 다른 평가가 나오곤 하거든요.


그런데 호러라는 장르는 원래 호불호가 심합니다. 다수의 관객에게서 대부분이 동의할 수 있을 만한 평가 여론이란 것이 형성되기 가장 어려운 장르가 바로 호러입니다. 여기서 ‘다수의 관객’을 평론가들로만 한정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물론 곡성 같은 경우는 99%의 평론가가 극찬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그리고 곡성 같은 호러 장르의 걸작으로 거의 공인되다시피 한 영화라도 대중적인 영역까지 평가의 범주를 확대시키면 평론가들의 호들갑스러운 극찬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나오게 됩니다. 곡성의 포털 사이트 평점은 고작 7점 중반대입니다. 아리 애스터의 ‘유전’은 그보다 더 낮고요. 아무리 잘 만든 호러 영화라도 대중들로부터 온당한 평가를 받는 것은 이다지도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곡성


같은 영화를 보고도 이렇게 평가와 반응이 극명하게 갈리는 현상이 생긴다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동시에 신기한 일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개개인의 취향과 성향이 있죠. 하지만 물에 얼음을 넣었을 때 물이 점점 차가워진다고 느끼는 것은 특정 취향과는 무관하게 모든 사람들이 공통되게 느끼는 현상입니다. 영화에서 사용하는 특정 효과나 연출 기법들은 분명히 정해진 목적을 가지고 사용되는 것이고(물을 차갑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얼음을 넣는 것처럼) 그것이 완성도 높게 구현되었을 때는 확실하게 그 목적에 부합하는 영향이 발생하게 됩니다. 사람마다 그런 영향들을 느끼는 정도나 이해하는 정도에서 차이는 있지만 분명하게 정해진 목적으로 보여지는 장면이나 연출들이 이렇게 극명한 반응의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건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매우 당연한 일로도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 마찬가지로 신기합니다.

어, 그런데 제가 위의 문단에서 ‘같은 영화를 보고도’라고 전제했습니다만,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우리가 언제나 같은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제목도 같고 감독도 같고 상영시간도 같은 영화인데, 실제로 우리가 본 영화는 ‘다른 영화’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것은 바로 영화를 관람하게 되는 ‘환경’때문입니다. 


거대한 스크린에 빵빵한 사운드로 감상하게 되는 극장의 환경과 27인치나 32인치 모니터에 몇 만원짜리 스피커나 이어폰으로 감상하게 되는 환경은 말 그대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영화의 내용은 동일하기 때문에 ‘같은 영화’라는 인식은 여전히 절대적으로 강합니다만, 이런 환경의 차이에서 알게 모르게 우리가 느끼는 감상의 양상에서 큰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화를 본 후 평가의 차이로 드러나기도 하고요. 제가 27인치나 32인지 모니터를 예로 들었는데, 요즘은 그 정도도 감지덕지.. 그냥 손바닥 크기의 스마트폰 액정으로 영화를 보는 사람도 많은 시대예요. 심지어 요즘은 영화를 보지도 않고 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그 놈의 유튜브 요약 영상(결말 포함)을 보고는 그 영화를 봤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런 경우는 위에 예로 든 ‘다른 영화’를 본 케이스가 아니라 명백히 영화를 안 본 겁니다. 

극장과 스마트폰 이라는, 극명한 감상 환경의 차이라면 분명 같은 (내용의)영화라도 평가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와닿는 얘기일 겁니다. 하지만 동일하게 극장에서 본 경우라도 환경적 조건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모든 극장이 똑같은 구조와 크기를 가진 게 아니니까요. 스크린 크기도 다르고, 사운드의 차이도 있으며 좌석의 거리나 스크린과의 각도 등등.... 물론 이 정도까지 되면... 진짜 극도로 예민한 사람만이 느낄 차이 아니냐 이 예민충아!! 하고 반발할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사실 한 편의 영화에 대해 이렇게까지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상황의 원인에 대해 깊게 분석하게 되면 이런 내용까지 파고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특히나 언론시사회 반응이 한결같이 비슷한 상황이라면요. 언론시사회를 본 사람들은 결국 같은 조건과 환경에서 영화를 본 거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개봉 당일 극장에서 랑종을 봤을 때 처음 느낀 당혹감을 설명하는 가설은 이거였습니다. ‘만약 언론시사회가 있었던 그 극장, 그 스크린으로 봤다면 지금과는 느낌이 달랐을까?’. 사실 이걸 꽤 깊이 고민했어요. 기억 나는 영화의 장면들을 악착같이 복기해 보면서 말이죠. 그런데 결국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니라고, 아닐 것이라고. 이건 진짜 안 무서운 영화가 맞고 언론시사회 반응에 속은 것이라고.

우선 영화에 대해 간단하게 리뷰해 보겠습니다. 이 영화가 얼마나 더럽게 안 무서운 영화인지를 제 나름의 감상으로 정리를 해볼게요. 

랑종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혹은 파운드 푸티지 형식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블레어 위치, 파라노말 액티비티 같은 센세이션을 일으킨 호러 영화들의 영향으로 이제는 이 장르가 호러 영화계에서 상당히 대세가 된 상황입니다. 솔직히, 너무 많이 나와서 이제는 지겨울 정도예요. 물론 한국에서의 일반적인 인식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 파라노말 액티비티 같은 영화가 한국에서도 유명하긴 하지만 당장 한국 영화계에서는 ‘곤지암’이 나오기 전까지는 메이저 영화로는 거의 제작되지 않은 장르였으니까요.(‘목두기 비디오’나 ‘귀신소리 찾기’ 같은 인디 영화들로는 제작되었지만)

파라노말 액티비티


다큐멘터리는 픽션이 아닙니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상황을 보여주는 영상물이 다큐멘터리의 본질이고, 그렇기에 페이크 다큐멘터리란 곧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척, 실제 상황인 척 하는 장르를 말합니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영상의 현실성과 신빙성입니다. 여기서 현실성이란 영상이 담고 있는 내용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는 촬영이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운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나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영화들이 많이 제작되기 시작하면서 이 장르의 제작진들은 ‘자연스러운 촬영 상황’에 대한 연구와 고민에 많은 노력을 투자했습니다. 이 장르에서 준수한 완성도의 작품들은 대부분 자연스러운 촬영 상황에 대해 제작진이 깊이 고민하고 연구한 흔적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절묘하게 이런 장면을 찍을 수 있었던 거야??’ 라는 의문이 명백하게 나올 수밖에 없는 장면에서는 좀 어거지 같고 작위적으로 보이더라도 어떻게든 말이 되는 상황적 설명을 깔아둡니다. 이 장르에서는 그런 노력이 최소한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랑종은? 그게 없습니다. 


랑종을 보다보면 이 영화의 장르의 본질이 흐릿해져요. 페이크 다큐멘터리인데도 일반 극영화나 다름없는 구도나 편집이 계속 등장하거든요. 관객이 그런 거(장르 정체성)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하려는 의도였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냥 제작진이 게을렀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그런 거 하나하나 설명하려고 들면 호러 영화는 못 찍지’ 이런 마인드처럼 보인달까. 그건 일반 호러 영화일 때 얘기지 영상의 현실성과 신빙성이 중요한 페이크 다큐에서는 어떻게든 어거지로라도 설명이 되어야 하거든요. 이 영화는 그런 기본적인 장르적 태도가 부재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내용을 봅시다. 현재 호러 영화계에서 지겹도록 만들고 만들고 또 만들고 있는 빙의물, 혹은 헌티드 하우스의 뻔한 내용입니다. 이 장르에서 최근에 정말 충격적으로 잘 만든 영화가 나왔는데 앞에서도 언급했던 아리 애스터의 ‘유전’입니다. 랑종은 유전의 큰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만약 유전이라는 영화가 없었다면 랑종에 대한 관객의 실망감이 조금은 줄어들었을 테니까요. 

유전


사실 아리 애스터가 현재까지 만든 두 편의 호러 영화도 소재나 내용에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상한 소재와 내용의 영화를 만들고도(물론 미드소마는 식상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는 소재이지만 아주 비슷한 호러 영화가 몇 편 있기 때문에) 아리 애스터가 현 시대 호러 영화계의 가장 핫한 감독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은 영화라는 매체의 가장 중요한 본질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시각과 청각으로 관객에게 어마어마한 충격을 선사했던 것입니다. 특히 시각적인 이미지 아이디어가 정말 놀랍습니다. 한 마디로 그의 영화에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이미지들이 등장합니다. 감독의 끔찍한 상상력에 경이감마저 느껴지는 그런 장면들.

 

 

[감독 이야기] 아리 애스터 Ari Aster

아리 애스터 Ari Aster 아리 애스터는 최근 몇 년간 데뷔하거나 두각을 드러낸 신인 감독 중에서도 가장 많은 주목과 기대를 받고 있는 감독입니다. 그야말로 호러 장르에서 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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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극단적으로 말해서, 이제 호러 영화가 승부할 수 있는 건 이것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얼마나 충격적인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가. 그저 충격적이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기발하고 관객이 뒤통수 맞았다고 느낄만한 상상력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유전에 바로 그것이 있었고 그래서 호러 팬들이 유전과 아리 애스터에 열광했습니다. 그런데 랑종은? 그게 없습니다.

안타까운 건 랑종의 스토리 자체는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수 있게 충분히 잘 설계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스토리 원안을 짠 나홍진의 공이죠. 아리 애스터 같은 상상력이 있었다면 끝도 없이 충격적인 이미지들이 쏟아질 수도 있는 내용이었어요. 빙의물의 전형적인 내용 전개이긴 하지만 스케일이 커졌고 이야기의 구조도 잘 쌓아올려져 있습니다. 특히 후반부 클리이맥스는... 자, 관객들을 지옥으로 떨어뜨릴 준비가 되었는가! 하고 완전히 제대로 준비된 무대였습니다. 하지만 실제 랑종이 보여준 것은 전혀 충격적이지도 무섭지도 않은 밍밍한 이미지들 뿐이었습니다.


랑종의 여주인공 이름이 밍이라서 영화 내내 밍 밍 소리가 끊이질 않는데 영화 자체도 이렇게 밍밍한 영화로 나와버린 것입니다. 이런 결과물이 될 거 였다면 차라리 뻔한 점프 스캐어를 남발하는 선택이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점프 스캐어가 호러 영화에서 가장 단순하게 관객을 놀래키는 방법이라 나름 수준 높고(?) 세련된(?) 방향을 추구하는 호러 영화에서는 점프 스캐어의 남발은 지양하는 편입니다. 랑종도 대체로 그런 방향을 선택했는데 유전 처럼 제대로 된 상상력이 없다면 결국 밍밍한 결과물이 될 뿐입니다. 예를 들어 화면 한 구석에 잘 보이지 않는 공포스러운 현상을 숨겨 놓은 연출이 몇 번 등장하는데 유전에 나온 피터의 침실 장면과 비교하면 애들 장난 수준입니다.(심지어 랑종은 이 장면 중 하나를 예고편에 공개해버리기까지 해서 영화를 볼 때 더욱 시시하게 느껴집니다.)

랑종의 후반부 하이라이트는 영화 전체의 밍밍한 느낌과는 별개로 전개 자체는 특별하다고 평가할 여지가 있습니다. 우선 스케일이 이 장르에서는 대단히 이례적이고(뭔가 묘하게 블록버스터 같은 느낌이 납니다), 절망의 개연성 자체가 상당히 크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제가 영화의 구조와 스토리를 이해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나카시마 테츠야의 ‘온다’가 떠오르는 전개인데 온다보다 훨씬 엄청난 것을 보여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였습니다.(사실 곡성의 영향을 받았다고 짐작 되는 온다의 후반부 파격적인 전개는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온다

 

 

[소설과 영화사이] 온다 / 보기왕이 온다

소설원작영화 리뷰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온다 / 보기왕이 온다 来る / ぼぎわんが,來る 나카시마 테츠야의 ‘온다’는 일본의 호러 작가 사와무라 이치의 소설 ‘보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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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하이라이트에서 최후의 퇴마의식이 행해질 때, 어리버리한 제자나 이 영화 최악의 트롤러의 활약(?)과는 무관하게 이미 상황은 답도 없는 지경까지 치달은 것이 명백해 보였습니다. 퇴마의식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으면서도 정말로 끔찍한 일들이 곧 벌어질 것이라는 분위기를 계속 풍기는데 이런 상황 자체는 적어도 각본 상으로는 매우 잘 설계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관객의 눈 앞에 펼쳐지게 된 광경은... 좀 심하게 말하면 밍밍한 걸 넘어서 웃기기까지 하더군요.

‘빙의 현상’에 대한 영화적인 표현은 지금까지 수 많은 빙의물 장르의 호러 영화들에서 의해 다양하게 그려져 왔습니다. 엑소시스트의 스파이더 워크 장면이나 샤이닝의 잭 니콜슨의 광기가 아마 가장 유명할 테고 곡성은 ‘뭣이 중헌디?’라는 임팩트 있는 명대사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꽤 잘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국산 파운드 푸티지 영화 ‘곤지암’에서도 빙의 현상의 연출로 상당히 큰 임팩트를 만들어낸 장면이 하나 있고요. 아리 애스터의 유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샤이닝


관객에게 큰 공포를 안겨주었던 성공적인 호러 영화들을 예시로 언급했지만 사실 어중간하고 밋밋한 표현만 나온 영화들이 이보다 훨씬 많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결국 중요한 건 상상력입니다. 이런 소재의 영화들이 숱하게 나왔기 때문에 이미 참신하다고 할 만한 아이디어는 거의 고갈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위의 문단에서 예로 든 곡성, 유전, 곤지암 같은 영화들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영화들입니다. 랑종의 후반부 처럼 호러 영화치고도 상당히 이례적인 난장판이 벌어지는 상황이라면 네발 걷기나 물어 뜯기 같은 식상한 표현들 말고 더욱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들이 발현될 여지가 충분히 있었어요. 그런데 들개들에게 습격당하는 동물 습격 재난 영화 같은 느낌 말고는 랑종의 후반부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상상력과 함께, 디테일도 중요합니다. 귀신(혹은 악령) 들린 사람의 모습은 적절한 분장과 조명 및 촬영 효과, 거기에 약간의 CG 효과를 더해서 정말 리얼하면서도 소름끼치는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곤지암의 유명한 바로 그 장면. 얼굴 클로즈업 한방으로 숨 넘어가는 공포를 만들어내잖아요. 이런 적절한 효과의 사용은 어려운(?) 연기를 펼쳐보이는 배우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도 필요한 것입니다. 까놓고 말해서, 저런 미친 연기를 했는데 밋밋한 디테일 때문에 원하는 만큼 공포스러운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역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민망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게 됩니다. 극장에서 관객이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 최악인 거예요. 바로 랑종의 후반부가 그런 경우입니다.


이 영화에는 각본상 내용으로는 굉장히 충격적인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여주인공이 빙의된 상태로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을 토막 내 버린다든지 아직 갓난아기인 사촌 동생을 죽이기도 하고 빙의된 상태로 여러 남자들과 난잡한 성관계를 가지는 등... 이렇게 글로 적으면 엄청나게 자극적이고 충격적일 거 같은데 막상 영상으로 표현된 장면들은 별 임팩트가 없이 밋밋해요. 눈에 보이는 영상 자체에서 충격을 받기보다는 머리로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고 나서 뒤늦게 약한 충격이 오는 정도입니다. 물론 성관계 장면은 꽤나 자극적이고 충격적이긴 합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냥 난데없이 엄청 적나라하고 야한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이 장면이 쓸데없이 깁니다. 뭔가 야한 장면이 나오다가 딱 끊어줘야 할 거 같은 순간에 두세 호흡 정도 뜸을 들이다가 장면을 끊어요. 이 두세 호흡의 시간이 꽤나 난감합니다. TV 보다가 난데없이 방송사고로 포르노의 장면이 2~3 초 정도 나오게 된 걸 본 느낌이랄까. 당연히 극장 안의 모두가 벙쪄서 숨죽이게 되고요.

랑종은 야한 장면 빼고는 모든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내용들이 지나치게 ‘수위 조절’이 되어 있습니다. 곡성도 표현 수위 자체는 그다지 센 편이 아닌데 그 곡성보다도 훨씬 약하게 느껴지는 게 랑종의 수위입니다. 여기서 언론시사회의 후기에 속았다 라는 느낌이 강하게 오는 겁니다. 이 언론시사회 후기의 내용들을 보면 정말 엄청난 수위의 호러 장면들을 기대하게 만들거든요. 유전이나 미드소마 정도는 되는. 아니 그보다 더 적절한 비교 예가 되는 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그렇게 유명한 영화는 아닌데 바로 푸티지 형식의 호러 단편들을 모아 놓은 옴니버스 호러 영화 V/H/S 입니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호러 팬들 사이에서는 꽤 반응이 좋아서 시리즈가 3편까지 나왔습니다. 이 중 가장 평가가 좋은 게 2편인데 그 2편에 수록된 단편 중 ‘안전한 피난처(Safe Heaven)’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이 V/H/S 시리즈에 수록된 단편 중 최고의 평가를 받은 작품이고 당연히 저도 가장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인상 깊게 본 정도가 아니라 그냥 압도 당했습니다. 

V/H/S 2 - 안전한 피난처


내용이나 상황은 다르지만 엄청난 규모의 초자연적이고 호러적인 난장판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안전한 피난처와 랑종은 상당히 닮은 작품입니다. 배경이 동남아라는 것도 닮은 점이고요.(안전한 피난처의 배경은 인도네시아입니다)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도중에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는 점도 동일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저는 이 영화에 그냥 압도를 당했습니다. 제가 받은 충격의 정도는 곡성, 유전보다 이 영화가 더 높습니다.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은 ‘레이드’로 유명한 가렛 에반스입니다. 수위 센 폭력과 잔인함에 있어서는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감독입니다. 랑종에 필요한 것도 바로 이 정도의 수위였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했죠. 개를 토막 내고 배가 뜯겨 창자가 흘러 나오는 장면들이 어떻게 이렇게 밍밍하게 그려질 수 있는 이제는 좀 신기하게 느껴질 지경입니다.

 

레이드


제가 생각하기에 결국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장르(혹은 형식, 혹은 방법론)에 대한 충분한 연구의 부재와 기술적 완성도의 부족함이 이 모든 의뭉스러운 밍밍함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영상은 일반적인 극영화의 영상과는 달라요. 그 다름을 어떻게 효과적인 호러 연출로 활용하느냐가 관건인데 이 영화는 사실상 역효과만 낸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평범하게 찍었다면 충분히 무서웠을 장면들도 어설픈 페이크 다큐멘터리 기법 때문에 밍밍하게 수위 조절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무섭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은 영화이지만 볼만한 요소가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식상한 소재임에도 각본의 완성도는 준수한 편이고 배우들의 연기도 괜찮았습니다. 특히 여주인공 역의 배우인 나릴야 군몽콘켓. 진짜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건진 게 이 배우입니다. 연기도 좋고 외모도 상당히 매력적이더군요. 영화의 내용도 나름대로 재미는 있습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플롯 구조가 잘 설계되었고 조금 뻔하긴 해도 결말도 나름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 이 영화는 무섭지가 않습니다. 호러 영화가 무섭지 않다면 역시 어떻게 해도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좋은 각본에 매력적인 캐릭터 등 재료는 잘 갖추어져 있었기에 이런 결과물이 더욱 더 아쉽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도대체 왜! 언론시사회에서는 그런 반응이 나온 것일까요? 물론 이 포스트의 첫 문장에서 이미 언급을 했습니다. ‘바이럴 마케팅’.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조금 납득이 안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언론시사회 후기 뿐 아니라 나름 공신력 있는 매체인 씨네21의 전문가 평점도 상당히 높게 나왔거든요.


이런 전문가들도 그렇고 언론시사회 후기글을 올린 사람들 중에서도 나름 이 업계에서(?) 알려진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얼마 전에 유명한 유튜버들의 뒷광고 논란으로 인터넷이 떠들썩했던 적이 있는데 영화를 비롯한 문화 산업 업계도 광고 아닌 척 하는 광고 활동들이 만연해 있는 현실인 걸까요? 씨네21 같은 나름 국내에서 권위 있다고 알려진 매체까지 가담할 정도로?

코로나 시국으로 요즘 한국 영화 산업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합니다. 전반적으로 극장 관객수가 감소한 상황이지만 외화와 비교해서 극장가에서 특히 더 고전하고 있는 것이 한국영화입니다. 랑종은 태국 영화이면서 쇼박스가 투자 배급하는 한국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화제가 될만한 영화를 조금이라도 더 잘 될 수 있도록 으쌰으쌰 밀어주자 하는 분위기가 업계 전반에 형성되어 있는 걸까요? 더 나아가서 구체적으로 여론 형성을 위한 평론계의 담합(?)이 실제로 이루어지기도 하는 걸까요?


사실 이런 종류의 바이럴 마케팅 행위는 호러 장르에서 특히 많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국내 시장에서 성공적인 마케팅으로 상당한 흥행 성과를 기록한 호러 영화들이 몇 작품 있습니다. 대표적인 영화가 ‘컨저링’이고 ‘애나벨: 인형의 주인’ 역시 개봉 당시에 바이럴 마케팅이 약간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들은 팝콘을 다 쏟았다든지 하는 (명백히 바이럴로 보이는)오버하는 반응 만큼은 아니어도 호러 영화로서 기본은 해주는 영화들입니다. 아니, 기본 이상인 영화들이죠. 때문에 오버하는 후기를 보더라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게 됩니다. 하지만 랑종의 경우는... 이미 인터넷 상에서는 마케팅에 속았다고 난리가 난 상황이고 바이럴 마케팅에 대한 더 큰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뭐 그냥 영화가 조용히 망하는 걸로 끝날 가능성이 가장 커보이긴 하지만요. 그래도 마케팅의 효과로 개봉 초반에는 상당한 관객이 몰리고 있는 상황이라 결국 큰 논란은 없이 바이럴 마케팅으로 적당하게 재미를 본 사례 중 하나로 남게될 것 같습니다.

애나벨: 인형의 주인


하지만 이번 사례로 인해 언시평에 대한 불신감이 지금보다 더욱 더 커질 것은 명백해 보입니다. 그리고 평론가나 영화 기자, 영화 관련 전문적인 매체들 역시 대중들의 신뢰를 조금은 깎아 먹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람들(중 일부)은 언제가부터 대중들의 반응은 전혀 신경도 안 쓰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언제나 만족스러운 소비를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실패한 소비를 하지 않기 위해 그렇게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숱하게 많은 소비의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원하고 필요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소비’이지만, 영화의 경우는 실제로 영화를 보기 전까지 이게 정말 내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그 상품이 맞는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예고편, 시사회 반응 등 영화를 보기 전에 얻을 수 있는 사전 정보들이 있지만 그것들이 이 상품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도 아닐뿐더러 이제는 심지어 ‘바이럴’이라는 속임수까지 만연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런 난관을 뚫고 영화를 소비해야만 하고(영화를 좋아하니까요!) 이런 실패의 사례 속에서도 교훈을 얻고 다음의 더 나은 소비를 위한 양식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뭐 결론은.. “인생의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지 방법이 없습니다.”


대서즐라
대중문화와 서브컬처를 즐기는 라이프
트위터 @dsz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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