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지마 히데토시(西島秀俊)는 1971년생으로 현재 나이가 50대인 배우입니다.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이 배우는 지금 지구 상에서 가장 잘생긴 50대 남자 중 한 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잘생기고 예쁜 배우나 연예인을 보면 ‘저런 얼굴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제가 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경우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안됩니다. 특히 중년의 배우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든 건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50대, 60대가 되어서도 저런 얼굴이라면 나이 드는 게 그다지 서글프게 느껴지지도 않을 것 같아요.
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젊을 때부터 엄청 유명했던 배우는 아닙니다. 이게 좀 의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정도로 잘생긴 배우라면 10대나 20대 초반 젊은 시절부터 이미 톱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잖아요. 예를 들어 니시지마 히데토시와 딱 한 살 차이인 1972년생 기무라 타쿠야처럼요. 기무라 타쿠야는 1980년대 말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1990년대 초에 이미 톱이었죠. 반면 니시지마 히데토시는 그보다 훨씬 늦은 2000년대 중반부터 배우로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또 거기서 한참이 지나 2020년대가 된 후 거장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에 출연하면서 세계적인 유명세를 가진 톱배우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지금이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전부터 스트로베리 나이트, MOZU, 유성왜건 등의 드라마 대표작들로 일드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하긴 했지만 정상급 배우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면이 있었죠.
그리고 저는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대표작인 저 드라마들을 하나도 안 봤습니다. 그래서 구로사와 기요시의 범죄 스릴러 영화 ‘크리피: 일가족 연쇄실종 사건’을 볼 때 주연으로 나온 배우가 누구인지 몰라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뭔가 낯은 익은데, 분명 일본에서 잘 나가는 유명 배우인 거 같은데 도통 누구인지는 모르겠는 거예요. 구로사와 기요시라는 명성 높은 감독에 카가와 테루유키, 다케우치 유코, 히가시데 마사히로, 카와구치 하루나 같은 유명한 배우들이 잔뜩 출연하고 있는 영화이니 당연히 주인공 역할의 저 잘생긴 중년 배우도 젊을 때부터 아주 유명했던 일본의 정상급 배우일 거라는 느낌이 팍팍 들었거든요. 분명히 수많은 유명한 작품들에 많이 출연했고 저도 그중 몇 작품은 봤을 테지만 미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 배우일 것이다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 생각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젊은 때부터 잘 나간 게 아니라 어느 정도 나이가 든 후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이고 때문에 과거에 유명한 출연작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는 것. 그래도 제가 본 작품이 있기는 했습니다. 네이버에 필모그래피를 검색해보니 캐산, 메종 드 히미코 등 제가 본 작품들이 몇 편 보이긴 하더군요. 그런데 워낙 오래전에 본 영화들이라서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어떤 역할로 나왔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과거 모습은 사실상 저의 기억에는 없는 셈입니다. 애초에 20대의 젊은 시절에는 이렇다 할 출연작도 없었고요. 배우 활동은 1992년부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 정도면 무명 시절이 굉장히 길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잘생긴 배우가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물론 젊을 때는 그다지 매력이 꽃피지 않다가 나이가 들어서 매력이 만개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런 경우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요.
사실 젊을 때 무명이다가 나이가 들고 전성기를 맞은 배우는 많이 있습니다. 특히 남자 배우들이 그런 경우가 많죠. 그런데 이런 케이스는 대부분 젊을 때는 특별히 잘생기거나 매력이 돋보이지 않아서 주목받지 못하다가 나이가 든 후에 외모보다는 연기력과 다양한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배역으로 성공을 거두는 케이스입니다. 물론 니시지마 히데토시 또한 중년이 되어 배우로서 전성기를 맞은 것이 외모보다는 연기력과 특유의 진중한 분위기 등 복합적인 매력이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역시 이 정도로 잘생겼으면 훨씬 일찍 주목받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젊을 때부터 유명하지 않았던 것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인 건 아닙니다. 출중한 외모를 가지고도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사라지는 연예인을 우리는 숱하게 봐왔습니다. 그리고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외모는 한 살 차이인 기무라 타쿠야와 비교했을 때 완전히 정반대의 타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 다 미남이라도 기무라 타쿠야 같은 타입의 외모가 먹히는 시대에는 니시지마 히데토시 같은 타입은 전혀 먹히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젊을 때 강렬한 인상과 화려함을 보여주는 미남의 경우 나이가 들면서 급격히 매력이 시들어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면 나이가 들며 중후함과 부드러움이 갖추어지면서 매력이 꽃피는 외모도 있죠.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바로 그런 타입의 미남인 것 같습니다.
외모 얘기만 너무 많이 했는데,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최고 강점은 역시 연기력입니다. 제가 ‘크리피: 일가족 연쇄실종 사건’을 보면서 누군지도 모르는 주인공 배우를 보고 ‘분명 엄청 유명한 일본의 톱배우인데 내가 미처 이름을 기억 못 한 경우일 거야’라고 확신했던 게 연기와 분위기에서 최정상 배우의 아우라가 압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같이 출연한 배우들도 하나같이 엄청 유명한 배우들이었는데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작품의 중심에서 압도적인 무게감과 존재감을 보여주더군요.
2022년 연초부터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출연 영화를 극장에서 두 편이나 봤습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와 ‘인어가 잠든 집’입니다. 두 작품 모두 소설이 원작인데, 원작 작가 두 명이 모두 한국에서 엄청 유명하고 인기 있는 일본 소설가죠. 무라카미 하루키와 히가시노 게이고. 저는 두 작품 모두 영화를 보기 전에 소설 원작을 먼저 읽었고, 자연스럽게 소설의 캐릭터와 장면들을 실사 영상으로 상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실제 영화를 보았을 때는 제가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던 것 이상의 특별함을 영화에서 느꼈는데, 그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니시지마 히데토시에게 있었습니다.
요즘은 그냥 이 배우 자체가 너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고 전성기를 맞이한 미남 중년 배우의 특별한 아우라. 거기에 안정적이고 기품이 느껴지는 훌륭한 연기력이 더해지니 이 배우의 존재감만으로 영화의 수준이 몇 단계는 뛰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사실 ‘인어가 잠든 집’은 의도적으로 최대한 영화에 대한 정보가 없이 보려고 했기 때문에 시노하라 료코 외에는 출연 배우가 누군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남자 주인공으로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뭔가 반가우면서도 소설에서 읽었던 남자 주인공의 느낌보다도 훨씬 커다란 존재감으로 다가오더군요. 실제로 영화 내용이 각색되어서 소설보다 남자 주인공의 비중이 더 커지기도 했습니다. 원래는 여자 주인공이 관여하는 에피소드를 남자 주인공이 관여하는 내용으로 바꿔서 소설과 영화 사이에 크게 달라진 부분이 생겼는데,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탁월한 감정 연기와 분위기 덕분이 이 각색이 소설보다 더 설득력 있는 내용으로 다가왔습니다.
[소설과 영화 사이] 인어가 잠든 집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
그런데 인어가 잠든 집은 한국에서는 늦게 개봉했지만 일본에서는 2018년에 개봉한 영화라서 최근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전성기를 대변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2021년에 개봉한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가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하마구치 류스케가 확실하게 ‘세계적인 거장 감독’으로 인증받은 걸작이며, 2021년 칸 영화제 각본상에 이어 곧 열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주요 4개 부문 후보에 올라 이 중 국제영화상 수상이 아주 유력한 상황입니다. 국제영화상 외에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후보에도 올랐는데, 너무 막강한 경쟁작인 제인 캠피온의 ‘파워 오브 도그’ 때문에 국제영화상 외의 분야는 수상 가능성이 낮습니다. 하지만 파워 오브 도그 정도의 엄청난 작품이 있으면 확실히 대진운이 나빴던 셈이니,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 이 작품의 가치는 충분히 인정받을 것입니다. 다만 아쉬운 건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입니다.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전미비평가 협회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기 때문에 아카데미 후보에도 오를 가능성이 조금은 있었는데, 아쉽게 후보로 선정되지는 못했습니다. 수상은 못하더라도 후보에만 올랐어도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지금 전성기에 더욱 큰 임팩트가 더해졌을 텐데요.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주연 배우로서 감독과 함께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주면 좋겠습니다.
미국 시상식 휩쓰는 일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아카데미도 가능?
‘인어가 잠든 집’도 소설에서 느끼지 못한 특별함을 영화에서 느꼈다고 했는데, ‘드라이브 마이 카’의 경우는 원작 소설이 워낙 짧은 단편인 데다 여기에 하마구치 류스케의 독창적인 작품 성향이 더해지다 보니 원작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특별하고 방대한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여기서도 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배우 커리어에서 최고의 작품일 것이며, 그야말로 배우로서 모든 재능을 쏟아부었다고 할 정도로 압도적인 연기력과 캐릭터의 표현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니시지마 히데토시에게 정말 확고부동한 대배우의 품격이 느껴졌습니다.
최근에 제가 본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작품 중에서는 NHK의 아침 드라마 ‘어서와 모네’라는 작품도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주연 여배우인 키요하라 카야 때문에 본 것인데요.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꽤 비중 있는 조연 역할로 나와서 아주 반가웠습니다. 사실 드라마에서는 대부분 젊은 배우들이 주역이 되고 니시지마 히데토시 같은 중년배우는 조연으로 출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50대에 전성기를 맞은 니시지마 히데토시라도 앞으로 드라마에서는 조연 역할로 볼 일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서와 모네에서처럼 조연이라도 아주 매력적이고 존재감 있는 역할일 테고 배우로서 그런 역할로 다양한 작품에 많이 출연하는 것도 괜찮은 행보입니다.
하지만 ‘드라이브 마이 카’를 통해 얻은 세계적인 명성은 이 배우의 앞길에 더 큰 기회를 많이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일본 배우는 이미 몇 명이 있는데 이제 니시지마 히데토시도 그런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배우들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실 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이미 예전에 김성수 감독의 ‘무명인’이나 김태희와 함께 출연했던 ‘나와 스타의 99일’같은 한일 합작 작품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고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도 한국을 비롯한 다양한 국적의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습니다. 앞으로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국제적으로 활동 영역을 더욱 넓혀서 할리우드 작품이나 한국 작품에도 많이 출연하게 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배우를 필요로 하는 좋은 작품은 국가라는 경계 너머에 더 많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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