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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그넌트 – 끝내주게 재미있는 익스트림 엽기 호러 (반전 스포일러)

by 대서즐라 2021.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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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 제목에 ‘끝내주게 재미있는’이라고 썼지만 사실 꽤 호불호가 갈릴 영화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와 ‘끝내주게 재미있는 영화’라는 평가는 양립할 수 없는 건 아니죠. 호불호가 갈린다 라는 평 자체가 요즘은 영화가 별로다 라는 평가를 돌려 말하는 표현으로 쓰이기는 하는데, 그 본래 의미로만 본다면 누군가에게는 엄청 재미있는 영화일 수 있다는 의미는 분명히 내포하고 있거든요. 제가 말리그넌트를 끝내주게 재미있다 라고 평가한 건 대중적으로 재미있는 영화라는 의미보다는, 그냥 제 취향에 너무너무 잘 맞은 영화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하지만 영화 자체가 대중적으로 잘 만들어졌다고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아무렴 최근 상업영화계에서 실패가 거의 없이 괄목할만한 성과들을 많이 내고 있는 제임스 완 감독의 작품인걸요. 감독의 대중적인 이름값과 기대치에 충분히 부합하는 영화가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리그넌트 포스터

 

(이 글에는 본 작품의 반전과 결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익스트림하게 재미있지만 그다지 무섭지는 않은

 

사실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호러영화인데도 그다지 무섭지가 않다는 점이겠죠. 엄밀히 말하면 호러를 베이스로 해서 다양한 장르가 결합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장르의 기본 틀은 컨저링과 같은 헌티드 하우스 포제션물입니다. 하지만 후반부 반전으로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나면서 다양한 장르적 속성이 튀어나오게 되고 영화는 매우 익스트림하게 폭주합니다. 무섭지는 않지만, 매우 재미있습니다. 엄청나게 몰입이 되는 상황 전개로 관객을 정신없이 몰아칩니다.

 

애나벨 월리스

 

매우 잔인하고 폭력적입니다. 제임스 완 감독이 최근에 19금 영화를 만든 적이 거의 없는데 오랜만에 이 작품에서 19금 스러운 영상을 잔뜩 담아냈습니다. 사실 헌티드 하우스 공포영화가 19금인 경우는 꽤 드물거든요. 요즘은 공포영화에 꽤 살벌한 장면들이 나와도 어지간해서는 15세 관람가 정도로 통과이고 최근에 나온 19금 공포영화인 ‘랑종’만 하더라도 야한 장면만 아니었다면 15세도 가능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리그넌트는 잔인함과 폭력의 수위가 확실히 19금다운 수준을 보여줍니다. 물론 공포영화다운 잔인함보다는 19금 히어로 영화인 잭 스나이더의 ‘왓치맨’ 같은 잔인함이었지만요.

 

굉장히 익스트림하고 자극적인 영화입니다. ‘쏘우’ 때부터 그랬지만 제임스 완 감독이 굉장히 강렬한 느낌의 영화음악을 잘 활용하는 감독이고 말리그넌트에서도 상당히 강렬한 스코어와 자극적인 음향 효과를 적극 활용해 중반부까지 청각적 자극으로 관객의 몰입도를 끌어올립니다. 그리고 반전이 등장하면서 어마어마한 시각적 자극이 더해지고 그때부터 오감의 자극을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정말로 익스트림한 영화예요. 극장에서 이런 짜릿한 시청각적 자극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 같습니다.

 

 

 

반전은 엽기적

 

이 포스트의 제목에 ‘엽기 호러’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엽기라는 단어가 아마 2000년대 초반 즈음에 인터넷에 굉장히 유행했는데 요즘은 거의 안 쓰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반전의 내용과 장면을 보고 그냥 머릿속에 이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정말 엽기적인데?

 

사실 말리그넌트는 애초에 이 반전으로 홍보를 했습니다. 정말 예상도 못한 충격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제임스 완 감독의 호러 영화라서 물론 원래부터 볼 계획이었지만 그래도 극장에 개봉하자마자 튀어가서 보게 만든 원동력은 홍보를 통해 알린 반전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반전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최대한 정보가 없이 개봉하자마자 재빨리 봐야만 하죠.

 

여주인공 매디슨

 

사실 이것을 ‘반전’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좀 희한한 용어를 만들어내자면 반전이 아닌 ‘메타 반전’이라고 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영화의 반전이라는 것은 영화에서 드러난 상황과 내용이 반전을 기점으로 뒤집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반전이 내용을 뒤집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케빈 스페이시가 발을 절뚝인 것과 같은 속임수가 이 영화에는 없어요. 오히려 속임수는 관객의 머릿속에 있습니다. 영화 자체에는 속임수가 없지만, 영화가 관객의 머릿속에 속임수로 만들어진 상상을 주입합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이 영화는 반전이 있다 라는 암시를 대놓고 드러내며, 관객이 열심히 반전에 대해 상상하도록 만듭니다. 하지만 그 반전은 실제 영화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영화에는 존재하지 않는 속임수가 관객의 머릿속에 상상으로 만들어져 버리는 것이죠. 이 상상이 실제 영화의 반전에서 뒤집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메타 반전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영화의 반전이 아니라 관객이 상상한 반전이 뒤집히는 것이니까요.

 

정말 철저하고 노골적인 방식입니다. 관객은 너무 뻔하게 제임스 완 감독이 유도한 방향으로 반전의 내용을 상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너무 노골적이고 뻔한 방식이기에 관객은 이 속임수에 완전히 지배당하지는 않습니다. 머릿속에 ‘설마 이건 아닐 거야’라는 생각이 계속 남게 되거든요.

 

공격당하는 매디슨

 

하지만 이런 머릿속 안전장치도 실제 영화가 보여주는 반전 내용에서는 무너져내립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시각적인 이미지가 너무도 충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반전을 대부분의 관객은 예상하지 못하겠지만, 저는 이것이 관객의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상력보다는 좀 더 근원적인 심리의 요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런 것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싶지 않아 합니다.

 

 

 

반전의 내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스포일러입니다. 아직 영화를 안 보신 분은 웬만하면 이 아래 내용은 읽지 마세요.)

 

처음에는 컨저링 유의 전형적인 헌티드 하우스 플롯으로 전개됩니다. 집안에서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일어나고 공포스러운 습격이 벌어집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연쇄살인마 영화같은 내용이 전개되는데, 이때 주인공인 ‘매디슨’은 집에 있으면서도 환각 같은 현상을 통해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살인 장면을 모두 목격하게 됩니다.

 

살인을 목격하는 매디슨

 

여기서 영화는 관객에게 너무 뻔한 답을 제시합니다. 집에 있는 매디슨이 멀리 있는 다른 장소의 살인 장면을 환각으로 목격하게 된다는 건, 실제로 매디슨은 집에 있는 게 아니고 그 장소에 가 있다는 것, 그리고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매디슨이라는 뻔한 진실을 암시합니다. 영화는 이 사실을 너무 뻔한 진실로 관객이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요.

 

그렇다면 관객은 자연히 영화가 깔아놓은 상상의 함정(속임수)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매디슨이 범인이라면, 어떤 원인으로 자각하지 못하는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것인가. 정신분열이나 이중인격 같은 정신병적 요인이 일차적으로 떠오릅니다. 아니면 포제션 장르의 정석대로 악마나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한 빙의도 생각할 수 있죠. 사실 포제션 장르에서 정신병과 빙의는 거의 구분되지 않습니다.

 

관객은 이 중 어느 쪽도 답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너무 뻔하기 때문에) 하지만 이 이상으로 상상이 발휘될 여지도 희박하죠. 억지로 쥐어짜자면 영화가 뻔히 제시한 답을 거부하고 정말로 매디슨이 살인 범죄와 무관하다는 내용 정도를 상상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살인을 목격한 건 어떤 텔레파시나 인시디어스에 나온 이 세계 공간 같은 개념이 적용될 수도 있을 거고요. 진짜 범인은... 여동생인 시드니 정도?

 

이렇게 관객이 진실을 찾기 위한 상상 속 숨바꼭질을 벌이고 있을 때, 영화는 살짝 예상을 벗어난 타이밍에 충격적인 진실을 드러냅니다.

 

진실은 무엇인가

 

물론 이 진실은 영화에서 분명히 암시가 되었습니다. ‘암을 도려낼 시간이다’

 

네, 범인의 정체는 바로 매디슨의 뇌에 달려 있는 ‘인격을 가진 종양’이었습니다. ‘암을 도려낼 시간이다’라는 대사도 그렇고, 말리그넌트(Malignant)라는 영화의 제목 역시 이 내용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Malignant는 의학적인 표현으로 대부분 쓰이는 단어입니다. ‘악성 종양’ 할 때 ‘악성’이 바로 Malignant입니다.

 

주인공 매디슨은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온전한 몸을 가진 매디슨과는 달리 쌍둥이 남매 가브리엘은 기괴한 형태의 미숙한 형체로 매디슨의 몸 뒤에 붙어 있는 모습으로 태어납니다. 샴쌍둥이와는 다르다고 하는데 솔직히 전문지식이 없어서 어떻게 정확히 구분되는지는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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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가브리엘의 실체가 드러나는 장면의 이미지가 굉장히 충격적입니다. VHS로 녹화된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에 화질도 구질구질해서 분위기가 오싹하고요. 매디슨의 몸 뒤에 끔찍한 형상으로 달라붙어 있는 가브리엘의 모습은.... 정말, 이런 건 보통은 절대 상상 못 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시각적으로는 이토 준지의 만화들이 떠올랐고, 내용적으로는 장재현 감독의 ‘사바하’가 떠올랐습니다. 하여간 매우 범상치 않은, 엽기적인 상상력입니다.

 

그리고 이런 엽기적인 모습을 한 가브리엘은 인격마저도 평범한 인간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강렬한 악의와 살의를 품고 있는 악마적인 존재였죠. 심지어 일종의 초자연적인 능력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가브리엘은 스스로 말을 할 수 없는데 주변에 있는 스피커나 라디오 같은 전자기기를 통해서 말을 합니다. 뇌파나 전파 같은 걸 보내는 방식일 텐데 구체적인 원리는 설명되지 않고요.

 

충격적인 진실

 

그리고 매디슨의 뇌에 달라붙어 있기 때문에 때로는 매디슨의 신체의 지배권을 가브리엘이 가지기도 합니다. 즉, 매디슨이 몸을 가브리엘에게 빼앗기는 것이고 끔찍한 살인은 이때 벌어집니다. 그런데 가브리엘이 매디슨의 몸을 지배하게 되면 어마어마한 초인적인 힘이 발휘됩니다. 이로 인해 영화의 후반부에 거의 슈퍼히어로 영화 같은 액션 장면들이 벌어져요. 이 내용은 M. 나이트 샤말란의 ‘23 아이덴티티’와도 닮았습니다.

 

매디슨의 몸을 지배한 가브리엘의 모습은 정말 엽기적인 비주얼입니다. 매디슨의 뒤통수 머릿가죽을 가르고 가브리엘의 끔찍한 얼굴이 튀어나오는데, 역으로 보면 가브리엘이 뒤통수에 매디슨의 얼굴 가죽을 달고 있는 모습이 됩니다. 가브리엘의 얼굴 방향이 매디슨의 몸의 뒤쪽이기 때문에 팔다리 관절을 뒤쪽 방향으로 뒤틀어서 움직이는데 이 모습이 정말 기괴해요. 그런 기괴한 행동으로 초인적인 완력과 민첩성을 보여주며 대살육을 벌이는 장면은 정말 ‘익스트림 엽기 호러’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장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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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정말 굉장한 영화입니다. 저처럼 취향에 맞는다면 엄청나게 재미있게 볼 수 있어요. 다만 결말은 좀 아쉬운 편입니다. 그렇게 익스트림하게 몰아붙이더니 이렇게 맥 빠지는 착한 결말은 뭐랍니까. 착한 결말이기도 하고 뭔가 뒷내용이 더 있을 거 같은 찝찝한 결말이기도 합니다. 속편을 염두에 둔 결말 같기도 하고요. 나이트메어 시리즈에서 이런 비슷한 결말을 본 기억이 있는데요. 아마 5편이었던 같은데... 나이트메어 같은 시리즈 영화라면 이해가 가는 결말이지만 말리그넌트가 과연 속편이 나올까요?

 

익스트림 엽기 호러

 

저는 이런 결말보다는 차라리 마지막에 또 다른 반전(다소 뻔하더라도)이나 불길한 암시 같은 걸 넣었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다 해결된 거 같은데 마지막에 상황을 뒤집어 버리고 암울하게 끝내버리는 건 제임스 완이 인시디어스나 데드 사일런스 같은 전작들에서 자주 보여준 방식인데요. 그런 것도 이제는 뻔하고 식상하다고 느낀 걸까요? 어떤 의도이든 간에 결말은 굉장히 아쉽습니다.

 

이렇게 아쉬운 점도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카드인 반전의 충격은 제대로 발휘되었고 후반부의 익스트림한 자극들까지 더하면 저로서는 역시 상당히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제임스 완이 굉장한 감독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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