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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영화사이

[게임과 영화 사이]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

by 대서즐라 2022.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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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원작의 영화 ‘레지던트 이블’의 리부트 신작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는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제가 상당히 기대했던 영화입니다. 하지만 북미에서 개봉하고 인터넷으로도 비교적 빨리 풀려서 영화를 본 사람들의 리뷰가 올라오자 기대감을 낮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주 심한 혹평들이 많아서요. 그래도 오래 기다린 영화이고 원래 이런 장르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걸 좋아해서 극장에 보러 갔습니다. 걱정만큼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못 만든 영화인 건 맞지만 장점도 꽤 있는 영화입니다.

 

레지던트-이블-라쿤시티

 

가장 분명한 장점이라면 역시 원작 게임의 분위기와 방향성을 잘 살린 점이겠죠. 밀라 요보비치가 출연했던 이전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에서 원작 게임 팬들이 가장 크게 불만을 품었던 것도 내용과 캐릭터가 원작과 너무 동떨어져 버린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밀라 요보비치의 레지던트 이블이 원작에서 안드로메다 수준으로 거리가 멀어져 버린 건 3편부터이지, 1편과 2편의 방향성은 원작에서 아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 내용의 기본 틀과 전개 구조는 어느 정도 원작과 유사했어요. 다만 주요 캐릭터가 대부분 영화판 오리지널이었고 시각적인 이미지와 컨셉이 게임과 많이 달랐습니다. 특히 밀라 요보비치가 연기한 앨리스라는 캐릭터가 원작에 없는 오리지널 캐릭터임에도 너무 압도적인 존재감과 비중을 보여주다 보니(주인공이니 당연하긴 하지만) 영화가 원작과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가장 큰 요인이 되었죠.

 

[게임과 영화사이] 레지던트 이블

 

[게임과 영화사이] 레지던트 이블

게임원작영화 리뷰 레지던트 이블 Resident Evil 영화 ‘레지던트 이블’이 굉장한 걸작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게임을 영화화한 작품 중에서 레지던트 이블만큼 재미있고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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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많은 불만이 있었음에도 밀라 요보비치의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처럼 특A급 상업영화 프랜차이즈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나름 ‘준 블록버스터 급’의 위치에서 괜찮은 흥행 성적을 거두며 무려 6편까지 시리즈가 이어졌습니다. 이 시리즈가 특히 가치 있는 것은 시리즈의 마무리를 굉장히 훌륭하게 지었다는 점입니다. 장기 시리즈에서 언제나 가장 어려운 것이 좋은 마무리를 보여주는 것인데 3편부터 내용이나 설정이 완전히 산으로 가버리면서 도무지 수습이 안 되는 수준으로 판을 벌려 놓고는 마지막 편에서 훌륭하게 ‘앨리스 사가’를 마무리 지은 것은 다시 생각해봐도 대단한 일입니다.

 

밀라-요보비치의-레지던트-이블

 

밀라 요보비치의 레지던트 이블은 시리즈 전체로 봐도 상당히 성공적이고 뛰어난 작품이고, 특히 1편과 2편의 완성도는 매우 훌륭합니다. 이번에 나온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와 비교하기조차 미안할 정도예요.

 

하지만 그래도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는 밀라 요보비치의 레지던트 이블이 가지지 못한 장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밀라 요보비치의 레지던트 이블도 1편과 2편까지는 내용의 큰 틀과 전개 구조가 원작 게임과 비슷하지만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는 그 정도를 넘어서서 아예 게임의 장면을 그대로 영화로 옮겼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원작의 내용과 분위기에 충실합니다. 제가 블로그에 원작이 있는 작품들을 리뷰하면서 한결같이 주장한 대로 저는 ‘원작 중시파’입니다. 특히 제가 원작을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영화를 원작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었을 때 높은 점수를 주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을 말하자면 제가 레지던트 이블의 원작 게임(국내에는 ‘바이오 하자드’라는 제목으로 알려진)의 엄청난 팬인 건 아닙니다. 게임이 제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취미인 건 맞지만 저는 콘솔보다는 주로 PC게임을 즐기는 쪽이었기에 레지던트 이블도 제 집에서 플레이해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플레이 스테이션이 있는 친구 집에 가서 했었어요. 1편과 2편 모두요. 당연히 그렇게 많이 해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친구 집에 있는 플레이 스테이션 게임 중에서 가장 몰입해서 즐겼던 게임이기는 합니다.

 

원작-게임-바이오-하자드

 

많이 플레이해보지 못했기에 당연히 스스로를 이 게임의 엄청난 팬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친구 집에서 이 게임을 하면서 아주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특히 어릴 때 저는 좀비라면 사족을 못썼거든요. 점점 좀비라는 콘텐츠가 대중화되고 다양한 스타일과 내용의 작품들이 나왔지만 저는 여전히 어릴 때 즐긴 ‘바이오 하자드’의 시각적인 이미지와 컨셉들이 좀비 콘텐츠로는 최고의 방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둡고 우울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

 

밀라 요보비치의 레지던트 이블 1편은 화면이 너무 밝았죠.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는 게임과 마찬가지로 영화의 모든 장면들이 어둡고 음침합니다. 원작 게임 자체가 어두운 공간에서 조심스럽게 움찔움찔하면서 진행하는 게임인데 영화가 그런 컨셉을 아주 잘 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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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뿐 아니라 내용도 원작 게임에 비교적 충실한 편입니다. 물론 당연히 원작 그대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영화 스토리의 가장 큰 특징은 원작 1편과 2편의 내용을 합쳤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전개 순서대로 1편 내용과 2편 내용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시간대로 겹쳐져서 진행됩니다. 저는 이 선택이 나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몇 가지 문제점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작 게임 1편과 2편은 각각 남녀 주인공이 한 명씩 있습니다. 1편의 주인공 크리스 레드필드와 질 발렌타인. 2편의 주인공 레온 케네디와 클레어 레드필드(1편 주인공 크리스의 동생). 영화에서는 이들을 모두 주인공으로 등장시킵니다. 즉, 영화에서 주인공 캐릭터가 무려 4명입니다. 하지만 원작 게임을 모르는 사람이 영화를 본다면, 그냥 카야 스코델라리오가 연기한 클레어가 단독 주인공인 영화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나머지 세 명은 주인공보다는 조연 캐릭터로 느껴집니다.

 

클레어-카야-스코델라리오

 

즉, 1편과 2편의 내용을 합침으로써 애초에 온전하게 원작 캐릭터의 역할과 내용 전개를 영화에서 그대로 살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버릴 건 확실하게 버리고 특정 캐릭터(클레어)에만 집중한다면 1편과 2편의 내용을 합친 의미가 없겠죠. 그래서 영화는 네 명의 주인공 캐릭터를 비교적 동등한 비중으로 그려냅니다. 클레어가 단독 주인공인 것처럼 보이는 인상이 있지만 비중을 보면 절대 그 정도는 아닙니다. 영화의 후반부까지 1편 파트와 2편 파트가 분리되어 교차로 내용 전개가 되기 때문에 클레어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들의 비중도 매우 높습니다. 사실 클레어가 카야 스코델라리오라는 가장 유명한 배우를 캐스팅했기 때문에 더욱 주인공 같은 인상을 강하게 주게 되는 듯합니다.

 

그런데 은근히 캐스팅도 이 영화의 큰 단점 중 하나입니다. 은근히가 아니라 대놓고 별로라고 지적하는 반응도 많은 편이고요. 일단 원작 캐릭터와 비주얼 적으로 싱크로가 전혀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밀라 요보비치의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에서 원작 캐릭터와 압도적인 싱크로를 보여주는 캐릭터가 나왔었죠. 바로 시에나 길로리가 연기한 질 발렌타인입니다. 그야말로 게임 원작 캐릭터의 영화화 싱크로로는 역대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비주얼을 보여주었습니다.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는 내용과 분위기가 원작 게임의 방향성을 충실히 따랐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는 캐릭터의 싱크로는 포기...한 정도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동떨어지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원작 게임에서 백인 캐릭터였던 레온과 질을 영화에서 유색인 배우가 연기했는데 최근에는 이런 캐스팅 경향이 PC주의니 뭐니 하는 거창한 의도보다는 그저 관성처럼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클레어-질-레온

 

사실 배우의 인종보다는 캐릭터 자체가 원작과 동떨어진 점도 많았습니다. 특히 2명의 남자 주인공은 원작에 비해 뭔가 소심하고 찌질한 캐릭터가 되었죠. 이 점에 원작 팬들이 특히 큰 불만을 표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카야 스코델라리오 말고는 대부분 인지도가 떨어지는 배우들입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캐릭터들이 무게감이 없습니다. 이건 캐릭터뿐 아니라 영화 전체의 느낌이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싸구려 같고 열악하게 찍은 티가 영상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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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내용과 분위기를 충실하게 따른다는 방향성 자체는 잘 잡았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열악하고 저예산인 환경에서 찍다 보니 여러 가지 한계를 드러낸 결과물이랄까요. 영화의 상영시간은 107분으로 짧다고는 할 수 없는데, 사실 요즘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할리우드의 상업 영화들은 2시간이 넘는 경우도 흔하죠. 이 영화도 원작의 1편과 2편을 결합시키고 주인공 네 명을 모두 등장시킬 거였다면 2시간이 넘는 좀 더 대작의 느낌으로 만들었어야 괜찮은 작품이 나왔을 거예요. 처음부터 영화의 규모에 맞지 않는 거창한 방향성이었던 셈이죠.

 

감독의 연출 실력도 문제입니다. 영화의 방향성과 컨셉은 괜찮았기 때문에 감독이 몇몇 장면에서 연출만 잘했어도 그럭저럭 영화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는 있었을 겁니다. 어둡고 한정된 공간에서의 숨 막히는 서스펜스 연출이 가능한 장면들이 많았거든요. 만약 똑같은 조건과 환경에서 제임스 완이나 에드가 라이트 같은 감독이 찍었다면 이런 장면들을 정말 잘 살렸겠죠. 하지만 이 영화의 감독인 요하네스 로버츠는 죄다 맥 빠지고 밋밋한 연출만을 보여줄 뿐이었습니다. 이 감독의 영화 중 ‘47미터’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대를 했는데 그냥 47미터가 뽀록이었나 봅니다. 애초에 47미터 말고 다른 연출작들은 거의 다 평이 별로였으니...

 

원작-분위기의-서스펜스-액션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는 확실히 못 만든 영화입니다. 밀라 요보비치의 레지던트 이블 1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에요. 다만 초반과 중반부까지 특별한 연출이나 내용 전개보다는 어두운 분위기와 컨셉만으로 서서히 긴장을 고조해나가는 빌드업의 단계만은 꽤나 흥미진진했습니다. 원작을 충실히 따른 장점이 이 부분에서만큼은 확실히 살아났고 그래서 중반 이후 드러나는 영화의 단점과 부실한 면모가 더욱 아쉽게 느껴집니다.

 

쿠키 영상에서 속편 예고를 하는데 흥행과 비평 모두 쫄딱 망해버렸으니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로서는 원작의 분위기를 잘 살린 레지던트 이블 실사 영화 시리즈가 어쨌든 계속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밀라 요보비치의 앨리스만큼은 아니지만 카야 스코델라리오의 클레어 캐릭터도 꽤 괜찮게 그려졌고 속편에서 작은 규모의 장르 영화에서 연출을 아주 잘하는 감독을 새로 고르면 이 리부트 시리즈를 살릴 기회가 아예 없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레지던트 이블은 좀비 콘텐츠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설정과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시리즈입니다. 언젠가 이 시리즈에서 최고의 호러 액션 서스펜스 걸작이 나오는 날까지 레지던트 이블의 영화화 프로젝트는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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