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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이야기

[만화가 이야기] 후쿠모토 노부유키 福本伸行

by 대서즐라 2021.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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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모토 노부유키 福本伸行

후쿠모토 노부유키는 너무도 개성적인 그림체와 파격적인 소재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그의 대표작 ‘카이지’를 본 사람이라면 이 작가가 가진 강렬한 개성(특징) 두 가지는 확실하게 각인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림체. 그냥 단순하게 평가하면 ‘못그렸다’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독특한 그림체입니다. 솔직히 만화 내용이 정말 훌륭하지 않았다면 프로 만화가라고 인정받을 수도 없을 정도로 난감한 수준의 작화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작화로도 어엿한 프로 만화가, 그것도 인기 만화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그림 실력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그의 작품의 내용이 정말 재미있고 완성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도박묵시록 카이지


후쿠모토 노부유키 작품의 두 번째 특징은 그가 선택하는 소재입니다. 바로 도박이죠. 사실 도박이 소재로 등장하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내용이 굉장히 자극적이고 충격적입니다. 도박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극한의 쾌락이자 중독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을 정도로 이 소재는 인간이 가진 모든 극한 감정과 상황들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은 도박이나 그와 유사한 상황을 살면서 몇 번씩은 경험해보게 됩니다. ‘도박’의 정의를 최대한 넓게 본다면 말이죠. 가위바위보나 주사위를 사용하는 간단한 아이들 놀이 조차도 모두 어느 정도는 도박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도박이 소재로 등장하는 유명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물론 대부분 끔찍한 내용들이죠. 특히나 도박 보다는 ‘도박 중독자’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은 내용이 정말 충격적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사채꾼 우시지마’고, ‘연장 아빠’ 같은 작품도 충격적인 도박 중독자의 묘사로 명성(악명?)이 높습니다. 반면 도박 중독자 보다는 도박이라는 승부(게임)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작품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도박마 바쿠’이고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대표작 ‘카이지’도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죠. 물론 이 작품의 주인공들도 기본적으로는 도박 중독자입니다. 다만 엄청나게 비범한 인물들이고 도박 승부에 괴물같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을 뿐이죠.

도박묵시록 카이지


후쿠모토 노부유키는 꽤 경력이 오래된 원로급 작가입니다. 1980년에 데뷔를 했으니 프로 만화가 경력이 40년이 된 셈이고 나이도 이미 60대입니다. 하지만 그가 유명해진 건 카이지가 대박이 터지고 나서입니다. 카이지 이전의 대표작인 ‘아카기’나 ‘은과 금’ 같은 작품도 카이지가 대박 터진 후에 재발굴된 케이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카이지는 1996년부터 연재가 시작되었고 아직까지도 연재 중인 작품입니다. 연재가 시작되자마자 히트 친 케이스는 아니고 조금씩 인기를 올려가다가 2000년대 이후에 비로소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은과 금


‘카이지’는 1996년부터 현재까지 20년 이상 연재 중인 작품이고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작가가 카이지를 연재하는 중간에 여러 편의 다른 작품들도 그려냈다는 사실입니다. 무뢰전 가이, 최강전설 쿠로사와, 도박패왕전 제로 등의 작품들이죠. 도박 소재가 아닌 작품도 있는데 대부분 인간의 밑바닥(?)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도박만화와 유사한 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 완성도 높고 흥미롭고 재미있는 만화들이에요.

최강전설 쿠로사와


하지만 역시 후쿠모토 노부유키를 대표하는 작품은 카이지입니다. 밑바닥 삶을 사는 도박 중독자의 이야기이지만 사채꾼 우시지마나 연장 아빠 같이 인간의 밑바닥 삶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도박이라는 승부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죠. 주인공 카이지는 독특하고 개성 있는 캐릭터입니다. 천재적인 도박 재능이 있는 캐릭터라면, 특히나 그게 만화 주인공이라면 보통은 초 엘리트 느낌이 나는 멋있는 캐릭터로 그려지거든요. 당장 이 작가의 또 다른 작품 ‘도박패왕전 제로’의 제로가 그런 캐릭터이고 도박마 바쿠의 주인공 바쿠, 그리고 라이어 게임의 아키야마도 그런 캐릭터죠. 하지만 카이지는 도박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으면서도 밑바닥 인생을 사는 인간쓰레기 도박 중독자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카이지를 인간쓰레기 라고 부르는건 제가 선택한 표현은 아닙니다. 카이지는 작품 내에서 그런 취급을 당합니다. 인간쓰레기라고. 그리고 그걸 본인도 딱히 부인을 못하죠. 주인공 카이지를 좋아하는 독자들 역시 그가 인간쓰레기가 아니라고 강하게 항변은 못해줄 겁니다.

도박패왕전 제로


하지만 그런 인간쓰레기 카이지를 독자들은 좋아합니다. 쓰레기이긴 하지만, 좋게 봐줄 구석이 조금은 있는, 아니 상당히 있는 매력 있는 쓰레기인 거죠. 이 얼마나 재미있는 역설입니까? 카이지가 다른 도박만화나 다른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작품들과 차별화되고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지점이 이 부분인 것 같습니다. 한심한 밑바닥 인생을 살지만 묘하게 인간적으로 끌리게 되는 카이지의 매력! 또 단지 그것 뿐이라면 모르겠는데 치열한 도박 승부에 임할 때의 모습은 엄청 멋있기까지 합니다. 도박만화의 적수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카이자와 승부하는 적수들은 모두 지독한 악당들입니다. 그걸 인간쓰레기인 카이지가 박살을 내버리는 사이다 전개가 이 만화 최대의 강점입니다.

도박묵시록 카이지


후쿠모토 노부유키가 담아내는 한결같은 주제는 결국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입니다. 물론 도박만화들 대부분이 이런 주제를 그려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도박만화에서 그려내는 인간의 본성이란 부정적인 것이 99%입니다.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작품도 대체로 그런 방향이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도박만화에 비해서는 상당히 희망적인 측면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림체의 영향도 있지만 뭔가 가벼운 개그만화 느낌을 주기도 하고 대체로 다루는 내용에 비해서는 ‘읽기 불편하지 않다'는 점이 후쿠모토 노부유키 작품의 또 다른 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이 작가의 작품에서 정말로 재미있고 개성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자와자와’로 대표되는 개성적인 수사표현입니다. 그런데 일본어 ‘자와자와’라는 표현이 이미 그 자체로 굉장히 개성적이고 독특한데 이걸 또 한국 발매본에서는 ‘술렁술렁’이라고 번역을 해버려서 한국인이 느끼기에도 굉장히 재미있는 표현이 되어버렸죠. 거기에 ‘압도적 감사’라든가 차가운 맥주를 마시는 쾌감을 ‘악마적이다’이라고 표현한다든가 하는 재미있고 임팩트 있는 수사표현들이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만화를 더욱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가 됩니다. 


솔직히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림체나 저런 재미있는 수사표현들을 보면 심각한 내용의 도박만화인데도 개그만화처럼 웃기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당장 카이지의 최종 보스 캐릭터이자 절대악의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재애그룹의 효도 회장만 보더라도 그 기괴한 악당 포스가 무섭다기 보다는 웃기다는 느낌이 들죠. 솔직히, 정말 개그만화에 어울리는 그림체예요.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바로 카이지에 등장하는 빌런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개그 만화들이 나와버린 것입니다. 심지어 이 작품들이 본편 카이지 못지 않은 대박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2021년 6월 기준 세 작품이 나왔는데 바로 ‘중간관리록 토네가와’와 ‘일일외출록 반장’, 그리고 ‘상경생활록 이치죠’입니다.


작화를 후쿠모토 노부유키가 직접 그리는 게 아닌데도 워낙에 모작이 쉬운 단순한 그림체라 다른 작가가 그려도 큰 위화감 없이 본편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내용은 전혀 딴판인 게 완전 작정하고 그린 개그만화라서 본편 카이지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죠. 세 작품 모두 엄청 재미있지만 저는 특히 ‘일일외출록 반장’에 푹 빠져 버렸습니다. 원래 이런 종류의 먹방+일상물 만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원작에서도 나름 입체적인 악역 캐릭터였던 반장을 더욱 흥미로운 캐릭터로 재해석한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요즘 제가 제일 재미있게 읽고 있는 만화 중 하나입니다.

일일외출록 반장


그나저나 본편 카이지는 도대체 언제쯤 완결이 될까요. 작가의 나이가 60대 초반인데... 요즘 60대 초반이면 딱히 노인도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몇 년은 계속 그릴 거 같긴 한데요. 20년이 넘는 연재기간 동안 중요한 도박 승부에서 매번 승리하면서도 뭔가 상황이 꼬이면서 시궁창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카이지... 이제 그만 그를 수렁에서 건져주고 멋진 해피엔딩으로 작품이 잘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네요.


대서즐라
대중문화와 서브컬처를 즐기는 라이프

트위터 @dsz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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