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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영화사이

[만화와 영화 사이] 은수저 (아라카와 히로무 원작 실사화 작품 리뷰)

by 대서즐라 2021.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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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저’를 그린 아라카와 히로무는 대단히 흥미로운 만화가입니다. 작가의 성향이 단순히 성별로 이분화될 수는 없지만 아라카와 히로무의 성별을 모르고 그의 만화를 본 사람이라면 그가 여성 작가라는 걸 알았을 때 꽤 놀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의 작품들이 매우 남성적인 스타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뭔가 묘하게 작품의 소재나 에피소드, 내용 전개에서 남자 작가들이 일반적으로 선택할 법한 요소들이 많이 발견되거든요. 하지만 여성 작가라는 걸 알고 보게 되면 또 ‘아아.. 그래서 이 만화가 이런 거구나’ 하고 묘하게 납득이 되기도 하고요.

 

은수저-영화-포스터

 

모두가 아는 대로 아라카와 히로무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은 ‘강철의 연금술사’입니다.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 정도는 아니지만 만화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 중 하나입니다. 애니메이션 또한 역사에 남을 걸작이고요. 그런데 제가 이 작가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은수저’입니다. 제가 원래 이런 스타일의 잔잔한 일상물을 좋아하기도 하고 강철의 연금술사 같은 배틀만화에서는 비슷하게 유명하고 뛰어난 작품들이 많지만 은수저 같은 청소년 일상물 장르는 좋은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기근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은수저-원작-만화

 

그리고 은수저의 실사 영화 또한 엄청나게 좋아합니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일본의 실사 영화들 중 완성도 높은 작품이 드물다고 하지만 그거야 스케일 큰 판타지나 SF 대작에서의 얘기지, 이런 일상물 장르에서는 꽤나 안전빵으로 좋은 작품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만화 원작의 실사 영화를 좋은 작품으로 만드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그냥 원작에 충실하게 만드는 것. 애초에 실사 영화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히트한 만화라면 원작이 아주 훌륭한 작품인 경우가 많고, 그런 원작의 내용과 캐릭터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실사 영화로 만든다면 대부분 볼만한 작품이 나오게 됩니다.

 

물론 반론도 있을 거예요. 저는 철저히 ‘원작 중시파’이지만 저와는 반대로 원작과는 차별화된 요소에 점수를 주는 관점도 존재할 거라 생각합니다. 확실히 원작이 존재한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만화와 영화는 다른 매체이고, 이런 매체의 차이가 반영되는 요소들을 안일하게 다루는 건 영화 제작 측이 게으름을 피우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거야 일본 영화 산업의 수준이 충분히 높을 경우의 얘기지.. 지금 일본 영화 산업의 창작 역량이라면 쓸데없이 새로운 거 만들고 원작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게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런 선택을 한 대부분의 경우에서는 원작보다 훨씬 못한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만화 원작의 일본 실사 영화들에 대해 전반적인 평판이 좋지 않은 거고요.

 

은수저의 실사 영화는 별다른 욕심을 부리지 않고 만들어진 작품이에요. 그냥 쉽고 간단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에는 개성 있는 좋은 배우들이 넘쳐나고 은수저에 등장하는 평범한(아주 조금 독특한) 농고 학생 캐릭터들과 싱크로가 높은 배우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을 겁니다. 사실 배우들을 적절히 캐스팅하는 것만으로 이 영화의 90%는 완성된 셈입니다. 딱히 실수하거나 잘못 선택될 여지도 그다지 없죠.

 

농고-학생들

 

가장 편한 건 은수저의 남녀 주인공인 하치켄과 미카케가 일반적인 소년만화나 순정만화 주인공들 같은 엄청난 미남 미녀 캐릭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엄청 잘생기거나 예쁜 만화 주인공 캐릭터들의 경우 실사 영화에서 아무리 출중한 외모의 배우를 캐스팅해도 뭔가 ‘그 느낌이 아니야~’ 라는 아쉬운 반응이 나오게 되거든요. 그런데 하치켄과 미카게 같이 비교적 평범(?)한 외모라면 실사로 표현하는 데 그다지 부담이 없습니다.

 

물론 하치켄과 미카케로 캐스팅된 두 배우가 미남 미녀가 아니라는 얘기는 전혀 아니고요. 나카지마 켄토와 히로세 아리스 정도면 정말 근사한 외모의 배우들이죠. 나카지마 켄토는 순정만화 원작인 실사 영화에서 꽃미남 주인공 역할로도 자주 보는 배우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배우의 작품 중에서 ‘미성년이지만 어린애는 아냐’라는 작품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아무튼 잘 생긴 배우이긴 하지만 은수저에서는 하치켄처럼 후줄근한 찐따 스타일에 안경까지 쓰니까 원작 캐릭터와 굉장히 싱크로 높은 비주얼이 되더군요.

 

하치켄역-나카지마-켄토

 

히로세 아리스는 이 영화의 베스트 캐스팅입니다. 이 영화뿐 아니라 제가 본 모든 만화 원작 실사 영화 캐스팅 중에서도 최상위의 싱크로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찍을 당시만 해도 히로세 아리스가 지금처럼 잘 나가는 배우는 아니었습니다. 동생인 히로세 스즈가 너무 유명하다 보니 그 유명세에 가려지기도 했고 히로세 아리스 본인의 지명도보다는 ‘대배우 히로세 스즈의 언니’라는 인식으로 유명한 상황이었죠. 그런데 그 후 몇 년 만에 동생 못지않은 유명 배우로 완전히 자리를 잡더군요.

 

미카게역-히로세-아리스

 

은수저에서 히로세 아리스를 봤을 때 굉장히 매력적인 배우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당시에는 엄청 유명한 동생의 인기로부터 소위 ‘버스를 타고’ 있다는 인상이 있기는 했어요. 아마 배우로 초반 활동을 할 때는 그런 측면도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히로세 스즈의 언니가 아니라 히로세 아리스 본인의 지명도와 영향력을 스스로 키워낸 게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역량과 재능은 은수저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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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켄과 미카게 외에 나머지 캐릭터들도 배우들이 다 괜찮았지만 특별히 한 명 더 언급하고 싶은 배우는 아야메 역을 연기한 쿠로키 하루입니다. 원래 좋아하는 배우이긴 하지만 사실 여고생 역을 하기에는 조금 어른스러운 이미지의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푼수 같은 여고생 아야메 역에 이 정도로 완벽하게 어울릴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감탄이 나오는 싱크로였어요. 다만 원작의 아야메가 워낙에 만화적으로 텐션이 높은 캐릭터다 보니 실사는 확실히 그 정도 텐션은 아니라서 조금 다른 느낌이긴 했지만요. 뭐 그래도 굉장히 만족스러운 캐스팅이었습니다.

 

아야메역-쿠로키-하루

 

사실 원작이 굉장히 텐션이 높은 개그만화인데 실사 영화는 너무 많이 차분해진 느낌이 없지는 않습니다. ‘원작 중시파’인 저로서는 이 점을 굳이 아쉽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이런 차분한 느낌은 제가 또 굉장히 좋아하는 ‘카모메 식당’ 류의 일본 힐링 영화 스타일에도 닿아 있어서 그 점이 역으로 만족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제가 살면서 본 수많은 영화들의 분류 목록이 제 머릿속에 정리가 되어 있는데 은수저는 ‘일본 만화 원작 실사 영화’라는 분류에도 들어가지만 ‘일본 슬로우라이프 힐링 영화’라는 분류에도 들어갑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제 취향에 닿아 있는 영화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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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저의 원작 만화는 15권 완결로 그리 긴 분량은 아닙니다. 사실 큰 에피소드가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소년만화라면 15권 분량의 내용을 영화 한 편에 담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은수저는 고교 3년의 생활 동안 벌어지는 다양한 작은 에피소드들이 15권 분량 안에 꽉꽉 채워져 있어서 영화 한 편에는 이 많은 내용의 일부밖에 담지 못했습니다. 부타동 에피소드나 축제 에피소드를 넣은 건 그냥 필연적인 선택으로 보이고요. 이 정도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기는 했지만 역시 원작 만화에는 그 뒤에도 엄청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기 때문에 영화의 속편이 제작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아니면 드라마로라도 보고 싶었는데.. 결국 이 영화 한 편이 끝이더군요. ‘해파리 공주’처럼 영화로 만들어진 뒤에도 나중에 영화와 별개로 드라마로 다시 만들어진 경우도 있는데요. 은수저라면 충분히 드라마로 만들 법도 한데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서 너무 아쉽습니다.

 

하치켄과-미카게

 

[만화와 영화 사이] 해파리 공주 (히가시무라 아키코 만화 원작 실사화 작품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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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은수저라는 작품은 힐링 영화로서도 재미있고 히트 만화의 실사화 작품으로도 안전빵의 선택으로 원작의 재미와 캐릭터의 매력을 잘 살린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만화 원작 실사 작품 중에서는 이 장르가 가장 볼만하기는 한데, 생각보다 이 장르의 히트작이 별로 없어서 영화가 많이 제작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얼마 안 되는 이 장르의 작품들을 열심히 찾아보고 앞으로 리뷰도 꾸준히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다른 장르의 작품들도 소홀히 하지 않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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