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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이야기

[유튜버 이야기] 소련여자 Soviet girl in Seoul

by 대서즐라 2022.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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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작성하는 시점 기준, 유튜버 ‘소련여자(Soviet girl in Seoul)’는 활동을 중단한 상태입니다. 이유는 소련여자의 모국인 러시아가 벌인 전쟁 때문이고요. 방금 쓴 두 문장이 어서 빨리 ‘과거의 일’, ‘지나간 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포스팅을 읽는 사람이 ‘소련여자가 유튜브를 쉬었어? 그랬던 적도 있었지.’라고 생각할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가 찾아오기를.

 

소련여자는 한국 유튜브 콘텐츠 업계에서 굉장히 유니크한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는 크리에이터입니다. 보통 외국인이 한국 관련 콘텐츠를 한다면 99%는 국뽕 컨셉입니다. 한국의 다양한 문화와 특성들에 대해 외국인들이 감탄하거나 놀라거나 하며 깊은 인상을 받는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이 주된 내용이죠. 하지만 소련여자는 다릅니다. 스스로 국뽕 채널이라고 소개하고는 있지만 실제 소련여자 채널에 등장하는 국뽕스러운 내용은 대부분 풍자이거나 웃기려는 컨셉입니다. 이 채널이 다루는 콘텐츠는 그냥 잡탕이고, 국뽕도 웃기기 위한 풍자 소재일 뿐입니다.

 

소련여자-크리스

 

저는 소련여자의 영상을 보면서 과거의 ‘개그 콘서트’나 그 이전 시대의 ‘오늘은 좋은 날’ 같은 개그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하나의 코너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가끔 웃기지 않는 영상이 올라올 때도 있지만 소련여자의 영상은 대부분 웃깁니다. 물론 주류 미디어의 개그 코드는 아니에요. 예를 들어 이런 코너를 하겠다고 개콘 PD 앞에 선보였다간 단번에 퇴짜맞을 만한 그런 개그죠. 하지만 우리는 유튜브 시대를 살고 있고 TV에서는 보기 힘든 이런 독특하고 과감하며 선 넘는 개그들을 마음껏 즐기고 있습니다.

 

코드는 다르지만 제가 소련여자의 영상을 TV의 개그 프로그램에서 볼 법한 코너처럼 느끼는 이유는 콘텐츠 자체가 굉장히 탄탄하고 안정적으로 구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대본부터 해서 영상의 재미를 살리는 다양한 효과와 편집, 드립들까지 분량이 짧기는 하지만 굉장히 치밀하게 설계되어 완성된 영상입니다. 원래 개그 프로그램의 코너들도 하나하나의 분량 자체는 짧은 편이었죠.

 

개그맨 중에는 똑똑한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남을 웃기는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것은 정말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소련여자 영상에서 효과적으로 드립들이 빵빵 터질 때는 이 채널의 제작자들 중에 천재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구독자 100만 명 이상의 대형 채널이지만 콘텐츠의 특성을 보면 그리 많은 제작 인원이 참여하는 것 같지는 않고 특히 처음 시작할 때는 소련여자와 편집자 겸 PD 두 명뿐이었을 가능성이 높겠죠. 즉, 초기부터 소련여자와 주욱 함께 하고 있는 편집자가 굉장한 능력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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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여자의 이름은 크리스입니다. 크리스가 영상에 등장하는 모습은 완전히 컨셉을 잡고 연기하는 모습이라서 실제로는 어떤 사람인지 명확히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아직도 크리스의 한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어요. 영상에서 한국말을 하는 것을 보면 컨셉을 잡고 일부러 미숙하고 엉뚱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실제 자연스러운 한국어 대화는 어느 정도로 하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뭐 평범하게 생각하면 한국에 유학 와서 꽤 오래 살았기 때문에 비정상회담에 나온 외국인들의 수준 정도로는 구사할 것 같지만요.

 

거기에 크리스가 콘텐츠의 내용과 아이디어 구상에 어느 정도 참여 지분을 가지고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그냥 평범한 외국 유학생인 여성에게 탁월한 개그 센스를 가진 편집자가 붙어서 이런 독특한 잡탕 개그 유튜버가 뚝딱 탄생한 걸 수도 있지만, 크리스가 원래부터 저런 4차원 기질을 가지고 있어서 한국인 편집자가 살짝 기름만 부어주고 탄생한 결과물일 수도 있죠. 처음에는 전자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두 가지 가능성이 합쳐진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소련여자-콘텐츠

 

하지만 아무리 한국어가 유창하고 한국 생활에 익숙하다고 하더라도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유행과 시사 코드, 각종 밈과 풍자 요소들을 이 정도로 완벽하고 적절하게 콘텐츠에 활용한다는 것은 외국인의 구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겠죠. 콘텐츠 구상에 크리스의 지분이 어느 정도는 있을 수 있지만 역시 한국인 편집자가 주도적으로 만들어간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적입니다.

 

소련여자 채널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장했습니다. 워낙에 유니크하면서도 네티즌들의 코드(일명 커뮤니티 갬성)를 정확하게 파고드는 흥미로운 콘텐츠를 초창기부터 꾸준히 업로드 했으니까요. 철저하게 ‘드립’으로 승부해서 이런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게 정말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성공한 유튜브 채널이야 넘치게 많지만 그 과정만 놓고 보면 가장 단순한 요인으로 단기간에 확실한 효과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소련여자 채널의 성과는 특히 두드러집니다.

 

어느 분야든 다 그럴 테지만 유튜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콘텐츠는 당연히 레드오션화 되고 경쟁이 치열해집니다. 그런데 외국인 국뽕 콘텐츠는 한국에서 꽤 인기 있는 주류 콘텐츠 중 하나이면서도 생각보다 이름이 알려진 대형 채널이 많지 않습니다. ‘잘생긴 백인 남성’의 국뽕 채널로 대표되는 영국남자 채널처럼 ‘예쁜 백인 여성’의 인기 국뽕 채널이 무조건 나올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런 대형 채널은 끝내 나오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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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채널 대신 소련여자라는 4차원 외국 여성의 잡탕 개그 채널이 등장해 대형 채널로 성장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소련여자는 외국인 국뽕 채널도 아니고, 크리스가 예쁜 편이기는 하지만 영국남자 조쉬처럼 거의 연예인으로 느껴지는 외모인 것도 아닙니다. 물론 이 부분은 좀 이견이 있을 것 같기는 한데요. 사실 한국에 들어와서 생활하는 러시아나 동유럽, 중앙아시아 쪽 여성들 중에서 정말 연예인이나 혹은 ‘엘프’라는 칭호를 붙일 만큼 화려하게 생긴 미녀들이 TV나 여러 매체에 자주 등장했었기 때문에 크리스가 그 정도의 미녀는 아니고 그보다는 좀 더 평범한 미녀에 가까운 외모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엘프급 미녀라고 느낄 수도 있는데 인터넷에서 크리스의 외모를 그 정도까지 찬양하는 반응은 그다지 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한국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백인 엘프급 미녀들이 유튜브든 뭐든 하면 금방 인기 끌고 잘 나겠다 싶은 생각도 들지만, 실제로 그렇게 유명해지고 성공한 백인 여성은 거의 없죠. 엘프급이라고 해도 지금처럼 유튜브와 SNS, 개인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는 어딜 가나 그런 미녀들이 넘쳐납니다. 본질은 역시 외모보다는 어떤 콘텐츠를 보여주느냐에 달린 것이니까요.

 

물론 영국남자 채널이 인기를 끈 데는 조쉬의 잘생긴 외모가 분명 어느 정도는 영향이 있었을 것이고, 소련여자 역시 4차원 잡탕 개그를 시크한 백인 미녀가 선보인다는 것이 이 채널이 핵심 매력이자 정체성일 것입니다. 사실 크리스는 이 채널의 성격에 딱 알맞은 정도의 미녀인 것 같아요. 정말 다른 차원의 엘프 같은 미녀이거나 아니면 미녀라고 하기는 어려운 외모였다면 지금 같은 느낌은 안 났을 것 같거든요. 물론 이런 의견에는 반론도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련여자-미녀

 

처음에 말한 대로 소련여자 채널은 현재 활동을 중단한 상태입니다. 저같이 이 채널의 콘텐츠를 꾸준히 즐겨왔던 사람이라면 당연히 소련여자가 빨리 돌아오기를 바랄 겁니다. 정확히는 전쟁이 (이치에 맞는 방향으로)종식되고 소련여자가 복귀하는 것을 바라고 있죠. 앞으로 전쟁의 전망에는 많은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지 않아서 소련여자의 복귀가 한없이 미뤄지거나 최악의 경우 소련여자 채널이 이대로 사라지는 것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사실 지금 같은 시기에 소련여자가 계속 영상을 업로드하고 그 콘텐츠가 푸틴과 전쟁을 비난하는 내용이라면 어마어마한 반응이 있을 것 같기는 한데요. 사실 이런 콘텐츠가 그 동안 소련여자 채널이 보여준 콘텐츠의 성격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크리스의 가족들이 러시아에 있을 테고, 여러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보면 그런 정도까지 선 넘는 행보를 보이는 것은 불가능하겠죠. 그저 이 어려운 시대에 평화를 소망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이 씁쓸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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